제2차 바티깐 공의회(1962~1965)는 과거 백년간의 연구와 경험을 총 점검하여 적극적인 요소들을 수렴하여 공인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교회를 세상에 개방하여 전인류의 광장으로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번 공의회는 과거를 정리하는 면도 있지만 앞으로의 연구와 경험을 유도하는 사목적 회의였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공의회는 교회헌장을 위시하여 4개의 헌장과 9개의 교령, 3개의 선언문을 반포하고 폐막에 즈음하여 온 세상에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들은 앞으로 연재될 원고에서 다루어질 것이고, 본고에서는 공의회가 표명한 교회의 자아의식을 정리해 본다. 공의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모습전체를 복음이라는 거울에 투사하여 명백한 자기의식을 표명하였던 것이다.
교회의 정체 관찰
1, 교회는 하느님과의 관련하에서 자신을 내성(內省)한다. 달리 말해서 교회의 신적국면을 고려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관찰한다.
교회라는 실재(實在)는 하느님의 구원의 경륜 안에서 계획되고 준비된 것이므로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그 기원이 있다. 성부께서는 온전한 자유와 사랑으로 인간을 당신의 모상을 따라 창조하시어 당신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안배하셨고 인간이 범죄하여 창조목적에서 이탈하자 성자를 파견하시어 인간을 구원하도록 계획하시고 구약을 통하여 성자의 강생을 준비하였다.
성자께서는 인간성을 취하여 세상에 오시어 구원의 가능성을 여시었고, 십자가상의 수난과 부활로써 인간을 구속하시고 그 구속의 은총을 모든 인간에게 주시고자 교회를 세우시고 이 교회 안에 성령을 약속하셨다.
성령께서는 이 교회 안에 항상 함께 계시면서 신자들을 성화하시고 교회가 구원의 진리를 틀림없이 선포하도록 인도하시고 모든 은총으로 교회를 성장 발전시키신다. 성서는 이러한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궁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교회의 신적인 국면은 성삼의 신비와 강생구속의 신비에 근거를 두고 있는 아득한 신비이다. 어떠한 언어로써도 이 신비를 충분하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성서적 표현이나 신학적 표현들은 교회를 묘사할 뿐이지 정의(定義) 하지는 못한다.
하느님의 백성
2, 교회는 인간과의 관련 하에서 자신을 내성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경륜을 인간역사 안에 구현하도록 소집된 하느님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역사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복음을 인간들에게 선포함으로써 스스로를 성장시킨다. 그래서 복음선포는 교회의 여러가지 사업 중의 하나가 아니고 교회의 생활자체이다.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교회는 신적인 국면과 함께 인간을 위한 인간적인 국면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가시적인 인간과 제도와 기구와 조직들은 구원의 은총을 전달하는 봉사적 도구이며, 이것을 운용하여 그리스도께서 구원사업을 계속하신다. 교회의 이러한 신인적(神人的) 구조 때문에 교회를 가장 큰 성사라 할 수 있다.
교회가 자기를 성사라고 의식함으로써 은총의 도구인 교계제도를 통치권력으로 생각하여, 주교직의 근원을 신품성사에 두고 주교직의 단체성을 공인하여 교황과 주교의 관계를 주종관계가 아니고 단체장과 단체원의 관계임을 확실히 하였다.
그리고 신부와 부제는 주교의 보조자이지만 그 직권은 신품성사에서 유래하였음을 명백히 하고, 평신자의 신원과 사명을 밝혔다. 이렇게 하여 모든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 직분상으로는 각기 다른 직위와 본분을 가지고 있지만, 신분상으로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동등한 자격을 누리고 있음을 천명하였다.
순례하는 백성
3, 교회는 세계와 역사 안에서의 자신을 내성한다. 인간을 위하여 인간역사 안에 존재하고 활동하는 교회는 세상과 역사와 더불어 영고성쇠(榮枯盛衰)를 경험하면서 종말의 완성을 향하여 순례하는 백성이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의 어느 지역에서나 역사의 어느 순간에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정화하고 거듭 쇄신되어야 한다.
이러한 종말지향적인 자아의식은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완성을 지향하는 성덕을 닦도록 소명되었음을 깨닫게 하고, 현세를 초탈하면서도 하느님 나라의 구현을 위하여 현세에 봉사하는 수도자의 신원과 사명을 일깨워 준다.
또 이러한 의식은 우리보다 먼저 완성에 도달한 성인들과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성모 마리아를 위시한 모든 성인들을 공경하고 본받으려는 가톨릭의 태도는 종말지향적인 친교의식에서 정당화되고 연옥영혼의 문제도 여기에 포함된다. 다만 교회헌장은 성인공경에 수반되는 일체의 남용과 과장을 경계한다.
인간에게 봉사하는 교회는 인간의 존재상황인 현세사물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갈라진 형제들과 또 모든 선의의 인간들과 협력하기를 다짐한다. 이렇게 볼 때에 인간활동의 모든 분야는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교회의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2차 바티깐 공의회는 호교론적 교회론시대를 결정적으로 청산하였다.
공의회 이후로 교회론은 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는 또는 구현해야 되는 교회상을 탐구하고 있다. 교회의 다양한 직무에 대하여, 각급 성직자와 평신자의 직무와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능한 직무에 관한 연구와 기초공동체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교회일치운동이 여러 수준에서 시도되고 연구되고 있으며 비가톨릭 교회들과 비크리스찬 종교들의 구세사적 의미와 비신자들의 구원의 가능성 여부 등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서방신학의 성령론은 동방신학의 성령론에 비하여 매우 미흡하기 때문에 이 방면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교회의 무류성에 대하여 논쟁이 요란했고, 소위 해방신학에 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공의회 폐막 후 불과 한 세대 동안에도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사목헌장의 어떤 부분은 벌써 보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제도로서의 외적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면서 새로운 존재양상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복음화를 위하여 교회는 스스로 쇄신하고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하고 세상을 하느님과의 친교에로 이끄는 사명은 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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