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TV뉴스시간에는 노동자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주먹을 치켜 올리며 구호를 외쳐대는 모습이 비춰진다. 때로는 무장한 전경들과 전쟁이라도 하듯이 최루탄과 화염병을 서로 던져 불길과 가스가 가득한 장면도 보게 된다.
전에는 매년 2백~3백건, 그나마 조용히 일어나던 노사분규가 87년 민주화 투쟁을 경과하면서 한 해에 2천~3천 건의 과격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매일 가까이서 지켜본 국민들은 많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선진국을 향해가던 경제발전의 문턱에서 퇴보하지 않을까』, 『불안하고 혼란한 사회가 오지 않을까』등등 많은 염려를 하게 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조용했던(?) 엄한 독재시대가 그리운지 힘으로 국민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분명히 지금은 어렵고 문제가 많은 시기가 이렇게 노동자들이 매일 여기저기서 농성을 하고, 학생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화염병을 던지고, 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이 감옥으로 끌려가는 것은 우리사회가 잘못되고 부패했으며, 억울한 일이 많은 병든 사회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이런 사태는 그동안의 억압으로 맺히고 쌓여있던 불만과 요구들이 분출되는 것이고, 잘못되고 불평등한 것을 바로잡으려는 저항의 몸부림이며, 병든 사회를 고치려는 데서 오는 아픔과 혼란이라고 할 수도 있다.
몇 년 전 「뉴욕 타임즈」에 한국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었다. 『한국 경제의 번영을 가져온 장본인들은, 많이 일하고 적게 받고 그것을 저축하며 살아온 노동자들이다. 이들에 비하면 정부나 기업이 기여한 것은 미미하다…(중략)…그러나 한국인들은 경제발전의 혜택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와 불만을 배출할 통로가 없어서 가끔 엉뚱한 곳에서 사건이 터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 측에서는 그들을 체포, 구타하고 감옥에 넣고 용공분자로 몰아붙인다』
어떤 통계에서는 일본 기업들은 실제 수익의 70%를 근로자들에게 분배해 주는데 한국의 기업들은 평균 49%를 노동자들에게 분배해주었을 뿐이라고 한다. 더욱이 일부 기업인들은 정권과 결탁하여 독재정권이 국민을 억누르는데 협조했고, 그 대가로 각종 특혜와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 성장함으로써 국가의 경제질서를 부패시키기까지 하였다.
잘못은 기업주가 저지르고 노동자들은 정당한 요구를 했는데도 처벌은 노동자가 받고 기업주가 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쌓인 불만들이 노동조합이나 정상적인 제도 안에서는 분출될 수 없었기 때문에 지하조직이 생기고 분신자살을 하는 등 엉뚱한 장소에서 파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폭발되었다.
지금은 산업계 안에도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주들은 여전히 지난 시대와 같이 정상적인 노사관계보다는 힘과 공권력에 의한 탄압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다. 구사대를 동원하여 폭력을 쓰고, 어용노조를 통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킴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의 노사분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주의 의식전환과 태도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노동자들에게 더 참으라고 하는 것은 문제해결이 안 되고, 힘에 의한 억압으로 일을 하던 자세에서 서로 대등한 노사관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된다. 정부 역시 기업주 편에만 서있지 말고 열쇠를 가진 기업주가 태도를 바꾸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도 기업주들이 힘과 권력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한 것처럼 조합으로 뭉친 힘을 집단적 의기주의를 위해 사용치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조합의 횡포로 국가경제의 어려움과 노동조합이 쇠퇴해가는 것을 보았다.
기업들, 특히 대기업일수록 사회의 공공성이 있기 때문에 몇몇 기업만 파업을 해도 사회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장의 노사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공공성을 핑계 삼아 힘으로 눌러서 해결하려고만 하는데, 잘못된 기업운영 방식의 개선, 노사관계의 올바른 정립,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조건들의 시정 등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쟁의행위들은 이런 기업 내의 부조리, 병폐 등을 치유하여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강한 산업사회를 이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분별력이 없고 과격한 투쟁은 기업을 망하게 하고 사회를 혼란케 하지만 적당한 요구, 부당한 것을 개선하려는 투쟁은 불만을 해소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게 하고 기업주를 자극하여 기업을 발전시킨다. 또한 이러한 투쟁은 노동조건의 개선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모순이나 불평등을 개선하는데 작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억압된 사람들의 인간해방을 위한 투쟁은 억압자들에게도 해방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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