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낮에는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밤에는 올리브산으로 돌아 가셨다가 아침이 되면 또 다시 성전으로 오셨다. 이 일과는 루가에 따르면 예수의 마지막 며칠간의 일과로 기술되어 있다. (루가21, 37) 사람들도 예수의 일과를 따라 밤에는 각자 자기 집으로 갔다가 아침이 되면 또다시 성전에 나와 예수의 말씀을 들었다.
이 때에 예수의 반대자들이 함정을 팠다. 간음녀 한사람을 잡아다가 예수앞에 데리고 와서 예수의 판단을 재촉하였고 예수께서는 그들의 농간을 피하여『죄없는자, 먼저 돌로 쳐라』라는 말씀으로 댓구하셨다. 이 사건이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악의에 찬 덫이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연에서이다. 율법에 따르면 약혼녀가 혼전정사를 다른 남자와 범했을 경우 친정의 동네 사람들이 돌로 쳐죽이라는 율법이 있고(신명22, 21) 창녀는 군중이 돌로 치고 창으로 찔러 죽일 것이다(신명 16, 40) 라는 예언이 있다. 요한 복음서의 이야기에 나오는 간음녀는 아마도 약혼녀였을 것이다.
한편 예수당시에는 유대아인들의 사법기관이었던 산헤드린이라고 최고회의는 로마제국의 통치밑에 있으면서 그들 자신이 직접 누구를 사형에 처하는 것을 금지당하고 있었다. 그러니 유대아의 지도층은 율법을 어긴 죄인을 놓고도 이러지도 저러지도못하는 딱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예수께서 만일 이 간음녀를 율법대로 돌로 치는 사형에 처하라고 하면 민간인으로서 로마 행정령을 위반하게 되고 반대로 풀어 주라고 하면 유대아인으로서 율법을 어기는 셈이 된다. 결국 예수의 반대자들은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예수께 뒤집어 씌우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에 빠뜨리려는 그들의 시도에 로마의 돈을 예수께 내보이며 세금문제를 들먹이는 올가미 (마르12, 13~17) 가 있었고 이혼문제를 들어 트집을 잡으려는 함정이 있었다 (마태19, 3).
아무튼 예수께서는 그들의 간교에 빠져 들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사회정의에 관한 출애굽기의 기사를 생각하면서 (23, 1~7) 『죄없는 자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는 멋있는 말씀으로 대답을 대신하셨다. 율법에는 간음녀를 돌로 치기전에 적어도 두 사람의 증인이 필요하였다. (신명19, 15)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증인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공정한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가 사법권을 가졌던 그들이 죄녀를 예수께 데리고 올 이유가 없었다.
이 점을 예수께서 말씀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마음이 딴데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 여자가 실제로 간음죄를 범했는지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만일 그랬다면 그의 남편될 사람도 고발자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들이 꾸미고 있는 것은 한 죄녀를 율법정신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를 올가미를 씌워 잡으려는 음계분이었다.
그 여자는 오로지 그 음모의 볼모였을지도 모른다. 이 음모가 실패로 돌아 갔음을 알고 그들은 노인을 위시하여 모두 돌아 가버렸다.
이 대목은 거짓 증언을 한 두 노인을 꾸짖는 다니엘서 수산나편을 연상시킨다 (다니13, 52~53). 예수께서 그들의 성화를 받으시고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고, 그들에게 현명한 대답을 하신 후에도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셨다고 했다. 무슨 내용을 쓰셨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다. ①서예로니모의 설이라고 하며 고발자들의 죄를 나열 했다는 것이다. ②혹은 다니엘서에 하느님의 손가락이 왕궁벽에 쓴 글『므네므네 드켈 브라신』 (다니5, 24) 이라 썼다는설, ③혹은 출애굽기의 말씀『사악한 자와 손을 맞잡지 말라』 (23、1) 라고 썼다는 설) 또는 예수께서 침착성을 찾고 생각하기 위하여 그저 땅에 낙서형식으로 줄을 벅벅 그었다는 설들이 있다.
어느 하나도 확실한 것은 없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복음서에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쓴 내용이 그리 중요치 않다.
고발자들이 다 떠나 간 다음 그 자리에서 예수와 죄녀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이 광경을 성 아우구스띠노는 간결한 라틴어로『불쌍한 여자(misera)와 불쌍한 여기심(misericordia) 둘만 남았다』라고 표현하였다.
예수께서 죄를 묻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느냐고 물으셨고 죄녀는『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죄짓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간음녀의 이야기는 요한복음서에만 나오는 대목이지만 원문평가학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다름아니라 글투나 용어 등으로 볼 때, 그리고 이야기 앞뒤의 예수의 교설중에 불쑥 끼어 있는 부자연스러운 삽입으로 볼 때, 그리고 고대 그리스 사본에는 이 이야기가 빠져있는 사실에서 볼 때 이 이야기는 요한의 것이 아니라 후대의 삽입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는 가톨릭이나 개신교측의 학자들이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가 처음 복음서에게 빠져 있던 이유는 초대교회의 엄격한 교회생활규율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회는 죄인에 대한 유대아인들의 불관용한 태도를 비나하는 예수의 용서에 관한 교리가 발전하면서 루가복음서의 자료집에서 요한을 중심으로 한 교회에서 채용했다는 설이 강력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2세기 시리아에서 성서 이야기로 알려져 있었고 3세기의 교전집 사도계율(didascalia)에 인용되어 있으며 5세기의 성 암브로시오, 아우구스띠노가 요한복음서 해설에 넣었고 예로니모가 번역한 성서속에 요한복음서의 이야기로 출판하였다. 이 상태대로 교회는 성서인정을 하였기 때문에 성서 정경성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