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대목은 요한복음 7장 마지막과 연결된다 (대목153). 예수는 아직도 장막절을 지내는 성전 경내에 있다. 거기서 성수예절이 있을때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고 외쳤다.
이번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고 외쳤다. 장막절초에 예수께서 슬그머니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기사로 시작하는 7장은 설교를 다하고 몰래 몸을 피하여 성전을 빠져 나간 것을 끝으로 하는 8장은 이야기를 한 대목으로 묶으려는 복음사가의 의도라고 볼수 있다.
「세상의 빛」대목은 세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빛」이고 둘째는 예수께 대한 증인은 하느님 아버지시라는 것이고 셋째는 예수의 심판의 성격이다. 생명수와 빛에 대한 예수의 선포는 구약성서의 역사를 뒤에 깔고 있다.
「생명의 빵」 (6장) 「생명의 샘」 (7장) 「생명의 빛」 (8장) 에 대한 교설은 유대아인들에게는 조상들이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헤매던 쓰라린 기억과 동시에 하늘의 만나와 바위의 샘물과 어두운 밤의 불기둥의 인도 등 하느님의 직접적인 은혜를 잊지 못한다 (출애 13,21). 그래서 장막절은 출애급축제라고도 할수 있다.
지혜서는 그 불기둥을 들어 불멸의 빛이라고 전해준다 (18, 3~4). 이제 예수는 그 빛이 당신이라고 외쳤다. 예수는 지금 성전내 부인들의 마당이라는 곳에 있고 이곳에는 황금촛대가 네 개 있다. 밤이 되면 이 촛대에 불을 켜는 예절이 있다. 촛대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고 꼭대기에는 역시 금으로 된 등잔주발이 있다.
그 주발에는 제관들의 낡은 속옷과 허리띠로 심지를 만들어 불을 붙이도록 되어 있다. 불이 켜지면 경건하고 선행을 한 사람들이 불타는 횃불을 들고서 노래와 찬미가를 부르며 춤을 춘다. 조상들의 에집트탈출을 기념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다.
히브리인들에게 빛은 소중하다. 잠언서에는 하느님이 한 처음에 지혜를 만드셨다 (8, 22) 하였고 과연 창세기에는 만물에 앞서 빛이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비춤이다 (지혜 7, 26). 그 반대로 어두움은 죽음의 고향이며 (욥 10, 22) 죽음에서 구출된 사람은 생명의 빛을 받으며 하느님 앞을 걷는다 (시편 56, 14) 는 사상은 구약성서에서 빛과 생명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가르쳐 준다.
생명을 주는 빵, 생명을 주는 물과 함께 예수께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빛이 바로 당신이시라는것을 단언하셨다. 태어 난,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생명을 얻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 1, 4: 3, 19). 그 빛은 이제 세상의 어두움을 허트려 뜨릴것이며 그 분을 믿는 사람은 어두움속을 걷지 않을 것이다 (요한 12, 46).
한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마태5, 14)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예수의 제자들은 바로 예수의 빛을 세상에 날라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빛에 대한 주제는 요한복음 9, 5절에 다시 언급되는데 여기서는 일단 중단된다. 율법을 금과옥조로 받들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세상의 빛이 율법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라고 군중에게 공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간만히 있을 리가 업사. 그들은 대들었다. 『당신이 당신 스스로 당신 자신을 증언하고 있으니 그것을 어찌 참된 증언이라 할수 있겠는가』. 이 공격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을 때도 들먹였던 논법이다 (대목 116참조). 과연 그들의 율법은 한 죄인을 법정에 세워 사형선고를 하기 위하여는 한 사람의 증언을 가지고는 불충분하여 (신명17, 6:19, 15). 그들의 율법해석서는『자기 자신에 대한 증언은 믿을 사람이 없으며… 아무도 자신에 대해 스스로 증언할 수 없다』라고 되어있다.
이 율법은 외부행위를 단죄할 때 법정에서 적용되는 원칙이지 예수의 경우와 같이 내적 진리에 적용될 법은 아니다. 양심주장은 믿거나 안 믿거나 둘중 하나뿐이지 증인을 요구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는 예수의 출신에 대한 문제로서 반대자들은 예수를 갈리래아출신이라고 인간적인, 그것도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은 반면 예수께서는 누차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왔다고 강조하셨다 (요한 7,27ㆍ28ㆍ34ㆍ35: 9,29~30 :13,36~37 :14, 4:16, 5:19, 9).
그러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예수자신만이 알고 있는 일이고 그 사실을 계시하고 계시는 것이다. 믿느냐 안믿느냐의 문제만 남아있다. 그래서 『내 자신의 증언이라 해도 참되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5장31절 『내가 내 자신을 증언한다면 그 증언은 참되지 않다』라고 한말과 모순되는듯 하지만 예수가 스스로를 증언하든 안하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아버지께서 증언해 주시는한 예수의 증언은 참되다라는 뜻이다.
인간은 인간적인 기준에서 판단하는데 옳치못한 판단은 바로 외적인 인간판단이다.
(고린전 1, 26: 5, 16)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을 그들은 이미 들었던 터이다 (요한 7, 24). 인간들의 판단을 가치평가를 하기 위한 판단이지만 예수의 판단은 인간구원에 관한판단이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분이「나와 나를 보내신 분」이 함께 판단하는 것은 공정한 판단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옳은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들은 바리사이인들은 문제를 돌려서『당신 아버지가 어디있소』하고 대들었다. 이 질문은 그들 자신이 예수의 신원을 무의식중에 물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질문이었다. 예수의 아버지를 아는것은 신앙의 문제이다. 그들은 세속의 눈으로 보기때문에 「나와 나의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복은 또 다시 때가 오지않았다는 말로 끝난다 (요한 7, 30,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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