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나타낸다」는 말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의 삶과 꼭 들어맞는 말인듯 싶다.
그것은 타수도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수한 창립배경, 독특한 영성, 수도회 역사에서 나타나는 특이하고 유명한 일화 등이 이 수녀회와는 언뜻 거리감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현재 3백42명의 수녀가 활동, 한국교회의 가장 규모가 큰 수녀회 중의 한 곳으로 꼽히고 있고, 적어도 한국교회 신자들 중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를 모른다는 이는 드물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수녀회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미지도 형성돼 있을 만큼 유명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드러내 놓고자 한다면「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의 특출함과 업적은 많다.
우선 이 수녀회는「한국교회 최초의 한국인 수녀회」라는 교회사의 장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과 70~80년대를 거치며 이 땅의 신자들이 성서 공부에 한층 가까이 갈수 있도록 지대한 공헌을 해온 점을 들 수 있다.
아울러 장애자ㆍ병원ㆍ본당 등 국내외에서 하느님의 도구 역할을 해온 점 역시 크게 평가받을 만한 업적이다.
그러나 수녀회의 이 같은 특출함과 업적에도 불구, 많은 신자들은 이 수녀회에 대해「특출함」보다는「평범한 가운데 친근한」인상을 갖고 있고, 또 이것이 많은 성소자들에게 매력을 주고 있는 현실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 수녀회에는 이런 이미지를 풍기게 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끈」이 있음을 쉽게 유출해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보이지 않는「끈」이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를 타 수도회와 구별짓게 하는 독특한 맛의 원천임도 쉽게 짐작케한다.
따라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가 현재 나타내고 있는 이미지와 독특한 맛을 함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이 보이지 않는「끈」의 정체를 명확히 알 수 있기 위해선 수녀회의 역사와 수도정신을 살펴보며 수녀회 역사와「활동의 주체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해 보는 것이 필요한 과정으로 나타난다.
1927년 평양교구가 설정된 이래 메리놀회는 이 지역을 맡아 사도적 열성으로 진취적인 사목활동을 펴나갔다.
그러나 그 당시 그들의 활동은 문화와 생활관습의 차이와 언어, 감정의 소통이 여의치 않아 그들의 노고에 비해 그 성과는 적은 편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제2대 평양교구장이었던 목(J. E. MORRIS) 신부는 31년 초부터 우리 민족의 구원사업에 헌신할 한국인 수녀회 창립을 구체화시키기로 마음정하고 메리놀 수녀회 한국지부에 한국수녀회 창립을 도와 지도를 맡아 줄것을 위촉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첫 방인 수녀회인「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는 32년 6월 27일 길의 인도자인「영원한 도움의 성모」를 수녀회의 수호자로 모시고, 평양 상수구리에서 4명의 첫 입회자와 3명의 메리놀회 지도 수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목 교구장의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창립하게 됐다.
이후 수녀회는 38년 2월 25일 교황청으로부터 설립인가와 회칙을 인준받았고 40년에 와서는 11명의 첫 서원자가 탄생하게 됐다.
그러나 수녀회는 이후 해방과 함께 밀어닥친 공산주의자들로 인해 초대원장인 장정온(앙네따) 수녀가 피납되고 수녀회 자체가 50년 5월 14일 강제 해산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부원장 강 베드로 수녀를 비롯 11명의 수녀만 남하, 새롭게 수녀회를 출범시키는 등 민족의 아픔과 발전의 궤를 같이하는 길을 걷게 됐다.
이런 가운데 수녀회는 자신들의 생활초석인 성서, 성 아우구스띠노의 규칙, 한국초대 교회의 순교자의 얼을 지키고 심화시키는데 주력해 왔다.
특히 수녀회는 이 세가지 기본 생활 초석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마음 한 뜻(사도2, 46)이 되어 공동생활을 하며, 모든 이에게 모든 것(1고9, 22)이 되라 등으로 수도정신을 압축, 이 정신으로 복음을 선포하며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복음선포」를 제1목적이자 수녀회의 가장 강한 특성으로 삼고 있는 이 수녀회는 현재 허원자 3백42명, 수련자 35명, 청원자36명 등 총4백13명이 한 가족을 이루고 있으며, 사도직은 본당, 성서모임, 병원 등등 다방면에 걸쳐 있고、새로운 식구를 맞이하기 위해 일정시간을 정해「성소모임」을 갖고 있다.
이같이 수녀회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대략『겸손한 한외국인 성직자가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녀회를 창립했고、이후 수녀회는 흩어지고, 일단의 수녀들이 남한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오늘날의 수녀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로 요약할 수 있는 것으로 그렇게 크게 부각되는 면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몇가지 점에 있어 보이지 않는「끈」을 알수있는 요인들이 발견된다.
첫째는 완전히 성숙되지도 못한 수녀회가 흩어지게 됐는데도 불구 창립정신이 오늘날에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고,「영원한 도움의 성모」께서 한국교회 신자들 안에 널리 알려지고 모시는 이들이 많아 졌다는 점.
둘째는 원로 수녀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도직의 일은 수월하게 풀렸고, 소속 수녀들이 연탄가스를 맡는 등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마다에도 고비를 무난히 넘겼으며, 복음선포를 할 수 있도록 성소자들이 많이 생기고 본당에도 많이 파견케 되었다는 점. 이외에도 부각되는 여러면들이 있는데, 모든 면에서 공통점으로 나타나는 것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의 도우심이었음을 볼 때 결국 보이지 않는「끈」, 수녀회의 주인공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이며, 이 수녀회 수녀들의 이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각별하고, 이것이 수녀회의 독특한 이미지를 꾸며주고 있다는 것이 수녀회를 아는 이들이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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