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 1990년대 서울의 강남은 한마디로 또 다른 하나의 「대한민국」이라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궁궐같이 지어진 거대한 식당들이 한 집 건너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흥청거리는 거리마다 세계의 온갖 유명품들이 찬란한 불빛 아래 행인의 눈길을 유혹하고 있다. 그곳에 위치한 유명 백화점들은 세계의 그 어느유명백화점과도 견줄 만큼 화려하고 호화로운 물건들로 가득 차 있고, 잘차려 입은 여인들로 장내는 온통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그 누가 이러한 백화점만을 보고 오늘의 한국을 얘기 한다면 우리나라는 그 어느 선진국 보다도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나라라고 말할 수있을것이다.
그러나 한 발자국만 비켜서면 깎아지른듯한 산비탈에 게딱지처럼 달라붙은 판자집들의 응어리진 삶의 숨막히는 광경히 펼쳐지고 있다. 빈민촌의 시장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아낙네들의 삶의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른 눈빛과는 달리 호화 백화점의 여인들의 눈빛은 인간의 정상적인 체온에 잘 순응된 품위있고 정숙하고 세련된 여유를 띄고 있음은 그 누가 보아도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수 없다.
▧둘 : 그러나 나자렛 예수가 선포하신「행복선언」은 『복되어라, 가난한 사람들…복되어라, 지금 굶주린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루가 6, 20 이하 참조)라고 선포 되고 있으니 그 누가 이 말씀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우리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부자들이 오히려 더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있는 잇점을 많이 지니고있지 아니한가. 그들은 자선금을 듬뿍 낼수도 있고, 온갖 피정과 기도모임, 세미나에 참석은 물론 원한다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도 가난한 이들보다 더 쉽게 더 많이 할수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생계의 쪼달리는 가난한이들은 주일 미사는 물론 교회의 모임이나 봉사활동은 엄두도 낼수 없을뿐 아니라 때때로는 어쩔수 없이 교회의 가르침을 거스려 살아야 할때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남보다 더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교회안에서 마저 소외되어 대접받지 못하고 밀려난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가난한사람들이 복되다 하고 부자들은 구원받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하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마르10, 23~27참조).
▧셋 : 어떤 이는 예수가 말씀하신 부(富)를 물질적인것보다 정신적인 것에 더 역점을 두어 말하지만 이러한 설교는 때때로 부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느님과 돈」사이 (마태6, 24) 즉 「압바와 맘몬」사이에는 결코 화합 할수 없는 대립을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수 없다』고 하셨고 부자청년이 찾아 왔을때 예수는 『당신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가진것을 팔아 가난한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다. 즉 당신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가난한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태 19, 21이하참조).
외적으로 아무런 흠잡을데 없이 성실하고 건실한 부자청년(마르 10, 17이하 참조)에게 우선 예수는 자신을 가르켜 「선하신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을 교정시키셨다. 옛는 우월감과 자기정당성의 확신에 차있는 그젊은이가 자기환상을 깨고 마음속에 초월적이고 지고한 선을 향해 마음의 눈을 뜰 것을 종용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넷 :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라』 (29절) 는 예수의 말씀은 이 부자청년에게는 틀림없이 가혹한 요구의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과 재산에 얽매인, 끝없는 인간의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예수와 같은 운명을 나눌것을 제자가 되는 첫째 조건으로 예수는 요구하고있다.
「맘몬」이란 확실히 「돈」이상의 존재임엔 틀림이 없다. 맘몬이란 인간의 내면에 무섭게 살아있는 교활한 세력이요, 그것과 결탁한다면 세상의 온갖 행복 즉 세상에서의 성공과 안전을 보장받으리라는 「악의 신비」에 자리잡은 어둠의 세력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유혹기사에서 나타났던 돈과 명예, 그리고 인간이 지닐 수있는 일체의 소유욕, 그것은 지식과 지위, 권력, 재능 그 모든 물질적 정신적 소유의 세계를 일컫는 것일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허상을 신봉케 하고 하느님의 얼굴을 가리게 하는 「인간의 우상」을 맘몬이라고 말할수있을 것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은 하늘나라를 향한 「새로운 인간상」으로 세상의 눈으로는 이해할수없는 약함과 실패, 끝없는 자기비하의 길로 「야훼의 종」의 길을 선택하는 것임을 예수는 말씀하시고 계신 것이다.
▧다섯 : 부(富)는 하느님의 축복이지만 많은 이웃이 고통 당하고, 굶주릴때 그들을 외면하고 끝없는 욕심으로 축적 할때 「피」가 된다. 「만일 누가 가난하다면 다른 누군가가 더 차지했거나, 물려받았기 때문이고, 더 가진 이 몫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기 전까지는 도둑질한 물건으로 남는다」고 교회의 교부들은 한결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그것이 물질적인것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많이 가졌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것이 아니라 가진 것 만큼 하느님과 이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라 할 것다. 그 책임이란 진정한 포기와 나눔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일 수밖에 없다.
세상의 가난한 이들의 그 「강요된 가난」이 인류의 죄라고한다면 이러한 복음적인 「선택한 가난」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 할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회의 수 많은 성인 성녀들이 걸었던 길이 바로 이러한 가난이었음은 두 말 할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은 가난으로써만이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한 우리 시대의 신학자「레오나르도 보프」의 말은 그 핵심을 극명하게 드러낸 말이 아닐수 없다. 인간의 행복과「백배의 축복」(30절)이 이러한 가난에 있음은 그 포기와 나눔의 정도에 따라 인간이 맛 볼수 있는 신적 기쁨과 평화의 정도가 다르다고 예수는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누가 이 길을 그리 쉽게 자기 힘으로 갈수 있을까. 오직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절대 사랑에 신뢰하는 길, 하느님의 뜻만을 찾았던 그 「나자렛 예수의 길」만이 우리에게 그 은총의 힘을 내려 주시리라 믿는다.
근심하는 빛으로 예수를 등지고 떠났던 부자청년, 가진것이 많아서 버리고 떠나기가 더 어려웠던 그 청년의 뒷모습에서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오늘 이 시대 우리교회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물질적 재화와 정신적소유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축복과 성사」가 되는 날을 기다려 깊어 가는 가을 마른나무 가지에 앉은 새처럼 나는 오늘 이저녁 언젠가 도대할 새하늘, 새땅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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