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신학자들간에 유아 세례에 대한 성서ㆍ신학적 타당성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곧 교회는 성인(成人)들을 상대로 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고백을 요구하며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를 거행하는데 어떻게 성인들의 조건에 해당하는 것을 유아들에게 적용시킬수 있을까? 따라서 유아세례는 구원의 조건들, 구체적으로 교회의 역할, 교회소 속의 필요성, 심지어는 교회의 성격에 까지 커다란 교의 신학적 논란을 야기시킬 수 있는 문제를 안고있는 것이다.
또한 교회 소속의 자격과 구원적 측면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신앙고백이 필수 조건인데 유아의 경우 세례받는 본인이 이러한 필수조건을 총족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과연 세례를 받아 교회 구성원이 될수있다는 말인가? 그러면 신앙고백 전에도 세례성사를 베풀 수 있다는 것인가?
이같이 유아세례는 일정한 입교준비기간을 거쳐 세례를 받게 되는 성인세례와는 달리 그 자체로부터 일면 교의신학적 문제를 안고있다.
또한 유아세례는 신자가정에 있어서 자녀의 종교교육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아세례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단지 부모가 신자라는 사실만으로 세례의 은총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후에 유아가 자라나서 스스로 그 은총을 인지ㆍ평가할 수 있도록 「세례은총」을 유지ㆍ보전시켜 나가는데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자가정의 자녀교육
「어머니는 가장 훌륭한 교사이다」라는 격언은 자녀교육에 미치는 어머니와 가정의 역할과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사회ㆍ심리학자들은 개인의 인격이 형성되는 가장 원초적이고 중요한 곳은「가정」이라는 데에 별다른 이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교회적 측면에서 볼 때 가정은 가장 소규모이면서도 근원적인 교회의 시작 이라고 한다.
유아들에게 가정ㆍ성당 등 주위의 분위기는 기본적 신뢰감과 불신감의 체득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Erik E. Erikson)은 주장하고 있다.
곧 이 시기에 검은옷이나 순교장면을 그린 성화 등을 보고 유아들이 무서워한다면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사실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주지시켜 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하튼 신자 가정의 부모들은 참된 사랑과 신념으로 하느님은 자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생활을 통해 증거해야 하는데에 교육의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어른 중심의 엄한 종교관ㆍ도덕관은 유아들에게 있어서는 밝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존재를 어둡고 엄하고 무서운 판관(判官)과 같은 존재로 느껴지게 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특히 주의가 요청된다.
만약 유아기에 하느님의 존재가 무서운 판관으로 잠재되게 되면 성장한 후 약간의 신앙적 혼란이나 갈등에도 쉽게 냉담에 빠지거나, 심한 경우 교회를 떠나버리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교도권의 가르침
418년에 개최된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어머니 복중에서 새로 태어난 어린이들은 누구나 다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을 단죄했다.
또 이 공의회는『원죄에 관해 교회가 견지하는 신앙규범에 따라 스스로 아직 어떤 죄도 범할 수 없는 어린이들이라 할지라도 출생을 통해 받은 것을 재생으로써 정화하기 위해,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 진실로 세례를 받는다』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그 후에 개최된 비엔나공의회ㆍ플로렌스공의회ㆍ뜨리덴띠노공의회 등에서 끊임없이 확인ㆍ옹호되었고 2차 공의회 후 1969년 9월 8일자로 어린이들의 실제상태에 적응시키라는 전례헌장 67조의 규정에 의해 새로운「어린이 성세 예식서」도 마련됐다.
또한 유아세례는「사도들로부터 받은 전통」으로 알려져 있다.
3세 기초에 기술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사도적 전승을 기술한 예식서에 다음과 같은 규범이 내포되어 있다.『먼저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베푼다. 그들 중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어린이들은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어린이를 위해서는 부모나 가족 중 누군가가 그들을 대신해서 대답해야 한다』
한편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 후대 교부ㆍ신학자들은 『세례받는 유아는 자신 스스로, 즉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즉 그에게 상통되는 교회의 신앙을 통해서 믿는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의 주교 시노드에서 성 치쁘리아노는『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은 그 누구에게도 거절되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으며, 동시노드에서는『모든 인간은 크기나 연령이 어떻든간에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출생 후 2일이나 「일 내에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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