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환 회장은 서예 성경 두루마리를 펼쳐보이며 “성경을 끌어안고 사는 것은 하느님을 끌어안고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성경을 붓글씨로 쓰는 과정은 오롯이 기도시간이었습니다.”
부산가톨릭서예인회 정명환(요한 보스코·부산 양정본당) 회장에겐 글씨를 붓으로 쓰는 예술도 또 하나의 기도가 됐다. 2004년부터 15년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붓글씨로 성경을 필사하면서 거둔 열매였다. 그리고 세상에 둘도 없는 서예 성경 두루마리 73권을 선보이게 됐다.
정 회장은 지난 3일부터 부산가톨릭센터 1층 대청갤러리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를 주제로 서예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23일까지 진행한다.
선보인 작품은 성경 일부분을 발췌해 쓴 족자 등이 아니다. 구약 창세기부터 신약 요한묵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자신만의 필체로 쓰고, 한 장 한 장씩 수천 장을 배접해 비단으로 표구한 두루마리 책과 같은 작품이다.
정 회장은 2004년 본당 총회장직을 맡으면서, 봉사자로서 내적 성장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수십 년간 각종 단체에서 꾸준히 봉사했지만, 학력과 경제력이 부족하단 생각에 총회장직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이러한 마음은 그를 성경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매일 직접 먹을 갈아 한 자 한 자 써내려갔다. 올해 2월엔 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가 수여하는 ‘성경 완필 인증서’도 받았다.
“성경은 읽는 것도 좋지만 쓰다 보면, 특히 붓으로 쓰다보면 더욱 정성이 들어가고 내용을 곱씹게 됩니다.”
필사 과정에서 정 회장은 “성경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 하느님을 끌어안고 사는 것임을 체험했다”면서 “성경은 단순히 책이 아니라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성경 필사한 것이 혹시라도 자랑으로 보여질까봐 사실 전시회는 열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본당 신자들의 적극적인 격려로 전시에 나서게 됐고, 가톨릭서예인회 회원 4명이 서예 성경 필사 대장정에 나서는 모습을 보곤 더욱 보람을 느꼈다.
정 회장은 “모양새를 그럴듯하게 내더라도 선의 질감은 확연히 차이가 나고, 해도 해도 어려운 게 바로 서예”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빠져드는 예술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서예를 통해 신앙생활을 활성화에 힘을 싣기 위해 13년 전 교구 가톨릭서예인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13년 만에 다시 회장을 맡게 됐다.
“어떤 색이든 다 흡수하는 먹색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성경을 붓글씨로 쓰는 것은 하느님께로 그렇게 흡수되는 체험과 같았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성경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