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란 무엇인가? 주교들의 회합인 주교회의는 개별교회(교구) 통치권자들의 회합이라는 점에서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주교회의의 성격과 그 내용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못한 편이다. 주교회의는 일반적으로 무엇을 결정하고 지시하는 교회내 최고 의결기구 정도로 일반에게 인식돼 있다. 그러나 주교회의는 의결기능보다는 협의체 성격에 그 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주교회의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주교회의의 성격과 기능, 그리고 한국주교회의의 역사ㆍ현황 등을 소개한다.
주교회의는 주교들이 그 회원으로 구성된다. 그러면 주교란 어떠한 직분인가. 교회법 (375조①항)에서는『하느님의 제정으로 부여받은 성령을 통하여 사도들의 지위를 계승하며 교리의 스승, 거룩한 예배의 사제、통치의 교역자가 되도록 교회안에 목자로 세워진자』
『주교들은 주교 축성으로써 성화하는 임무와 함께 가르치는 임무와 다스리는 임무도 받는다』(교회법 375조②항)는 것이 주교들의 임무이다.
그리고 『교구장은 자기에게 맡겨진 교구에서 그의 사목임무 수행에 요구되는 일체의 고유한 직접적 직권이 있다』고 명시돼 있다.
다시말하면 교구를 책임지고 있는 교구장에게는 국가기구에 비견해 볼 때 교구내 입법ㆍ사법ㆍ행정 3권이 부여돼있다.
이 권한은 각 교구장에게 독자적으로 부여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주교회의라고 해서 이를 조정 또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주교 직분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되는데 어떤 교구의 사목이 위탁된 주교는 교구장이라 불리고, 기타는 명의주교들이라고 일컬어진다. 교황대사, 보좌주교, 군종주교 등이 명의주교에 해당된다.
그러면 주교회의란 무엇인가? 『상설기관인 주교회의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선익을 더욱 증대시키기 위하여 해당 지역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한 어떤 사목임무를, 특히 시대와 정소의 상황에 적절히 적응시킨 사도직의 형태와 방법으로 법 규범에 따라 공동으로 수행하는 한 국가나 특정 지역의 주교들의 회합이다』 (교회법 447조).
주교교령 38항에서는 주교회의를 『한 국가나 지역의 주교들이 시대에 맞는 사도직의 형태와 방법을 연구함으로써 교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선익을 더욱 증대시킴을 목적으로 사목임무를 공동으로 수행하기 위해 모이는 일종의 집회』로 규정하고 있다.
교회법이나 주교교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교회의 성격은 각각 「회합」과 「집회」하고 표현하고 있을 뿐 동일하다. 그 목적 역시「사목임무를 공동으로 수행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라고 명시, 주교회의는 중앙집권적 기구가 아니라 협의기구임을 알 수 있다.
『주교회의는 저녁식사후 TV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진짜 주교회의다. 그때는 주교들이 신부들에 관한 이야기나 밖으로 알리고 싶지 않은 체험을 서로가 솔직히 토로한다. 이러할 때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나 이렇게 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등 이러한 것이 주교회의의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교회의의장 김남수 주교가 지난해 신년호「가톨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이 견해는 주교회의의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교회의란 무엇을 결정하는 결의기구가 아니라 사목임무를 고동으로 수행하는데 유익한 사안에 대해 협의과정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합의하는데 그 요체가 있다.
주교회의에서 합의된 사항이라 하더라도 교구장은 거기에 따라 가야만 하는 의무는 없다. 다만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은 사랑, 형제애(ex caritate)에의한 것이다. 의무가 부여되는 것은 협의일 수 없기 때문이다.
주교회의 자체가 협의기구라는 것은 다시말하면 교회의 모든 권위는 각 교구장들에게 독립적으로 부여돼 있음을 의미한다. 평신도 단체들이 중앙집권적 체제로 운영될 수 없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주교회의의 성격이 이러하기 때문에 주교회의 의장 직분은 회의를 진행시키는 사회자 역할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주교회의가 어떠한 사안에 대해 결정하고 지시할 수 있는 기구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교구장의 위치가 모호해질 위험성이 있으며 자칫하면 주교회의 의장이 마치 한국 가톨릭의 대표로 오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교구장 주교가 한국교회의 대표가 될 수 없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로마가톨릭의 대표는 오직 교황한분 뿐이며 교구장은 해당교구의 대표일 뿐이다.
주교회의 회원 즉, 주교회의에 법 자체로 속하는 이들은『지역내의 모든 교구장들과 법률상 그들과 동등시 되는이들 또 부주교들과 보좌주교들 및 사도좌나 주교회의에 의하여 맡겨진 특별임무를 그 지역내에서 수행하는 그 밖의 명의주교들이다』(교회법 450조①항).
여기서 법률상 교구장과 동등시되는 이들이란 교구장서리 또는 교구장 직무대행을 말하는 것으로서 현재 한국주교회의에는 이동호 아빠스가 주교품은 받지 않았으나 함흥교구ㆍ덕원면속구장 서리자격으로 주교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교구장 직무대행은 교구장 공석이 발생하면 교구참사회를 통해 교구신부중에서 임명되는데 비교적 전주교구가 여러번 이 과정을 거쳤었다.
부주교란 교구장 승계권이 있는 보좌주교를 말하며 한국교회의 군종교구장 주교는 법률상 교구장과 동등시되는 자격과 특별임무를 그 지역내에서 수행하는 명의주교 자격을 겸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주교회의 총회는『매년 적어도 한번 개최되어야 하고 그 외에도 특별히 사정이 요청하는 때마다 정관의 규정을 따라 개최되어야 한다』(교회법 453조). 한국주교 회의는 현재 매년 봄ㆍ가을 두 차례의 정기총회와 필요시 임시총회를 갖고 있다.
기록상 첫번째 한국주교회의는 의외로 1857년에 개최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는 박해시기였을 뿐아니라 교구라고는 1831년 설정된 조선교구(대목구) 하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교는 제4대 조선교구장 장시메온 주교와 부주교(승계권 있는 보좌주교)인 안안또니오 주교 단 두명이었다.
1931년 8월 경향잡지(25권, 364쪽)는 1857년에 장주교께서 안안또니오 신부를 당신 부주교로 삼아 성모영보 첨례날(3월 25일)밤에 주교 성품에 올리시고, 즉시 양 위 주교가 제1회 전조선 주교회의를 거행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첫 주교회의가 열린 장소는 남대문안 작은 집으로 되어있는데『그때는 조선에 성당이 하나도 없었을 뿐아니라 지금 서울대성당(명동)같은 성당은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신부 몇명과 회장 몇사람이 참례하는 가운데 장주교께서 안주교께 주교성품을 주시고 즉시 주교회의를 열어 바삐 거행하신후 각각 모두 흩어졌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내용은 제1회 전조선주교회의 개최후 74년만에 기록된것이기 때문에 당시 주교회의에 참가한 주교, 신부, 회장 등이 기술한 것일 수는 없고, 당시 어떤 자료나 구전에 의한 것으로 보여진다.
아무튼 현재까지의 기록상 한국교회의 첫 주교회의는 1857년 성모영보 첨례날밤에 열렸으며, 장소는 남대문안 어느 작은 집, 참석자는 장시메온 주교와 안안또니오 부주교, 그리고 신부와 회장 몇명이 이 회의를 참관한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글러나 회의 내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주교회의를 열어 바삐 거행하신 후 각각 모두 흩어졌다』는 내용은 당시 한국교회가 박해중이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당시 주교회의의 내용이 전혀 기록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자세할 알 수는 없으나, 주교회의가 여느 단체의 회의와는 달리, 단 두명만으로도 가능한 주교들의 의견교환, 체험교환, 참고사항 등을 서로 나누는 집회이며 회합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857년 이후 기록상 나타난 주교회의는 74년후인 1931년이다. 1931년은 조선교구 설정 1백주년 기념의 해로서 당시 5개 교구교구장들이 3월 23일 예비회의를 거쳐 9월 13일부터 25일까지 13일동안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설정 1백주년 기념공의회를 겸해 가졌다.
이 회의에서는 1년전 개최한 한국공의회에서 작성한 지역교회법인 공동지도서를 성청으로부터 인준받아 공포했다. 이 공동지도서는 지금까지 한국교회 지도서로 사용돼오고 있다.
1931년 주교회의 당시는 대구(1911년) 원산(1920년) 평양(1927년) 연길(1928년) 등 4개 교구가 새로 설정되어 서울을 비롯 5개 교구 주교들이 참석했다.
이후 5개 교구 주교들은 1933년 두차례, 1934년과 1935년에 각각 한번씩회의를 가졌다.
그후 1940년에 한차례, 8ㆍ15해방후인 1949년, 그리고 6ㆍ25동란이 끝난후 1953년부터 1961년까지는 1958년을 제하고는 매년 주교회의가 열렸다.
1962년 한국교회의 교계설정과 제2차 바티깐공의회를 계기로 1964년부터는 임시총회를 포함 매년 2~3차례씩 개최해오다가 1972년부터는 춘ㆍ추두번에 걸쳐 정기총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1857년부터 1958년까지의 주교회의의 유일한 자료는「경향잡지」뿐인데 경향잡지의 창간이 1906년이기 때문에 그 이전의 자료는 경향잡지에서도 찾을 수 없다.
또한 경향잡지가 주교회의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1931년부터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관한 기록은 전혀없는 실정이다. 1931년부터 1958년까지의 주교회의 자료원본은 주교회의 사무처에도 보존되어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당시 주교회의 사무처가 정식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주교회의는 현재 군종 교구를 포함한 15개 교구장주교, 서울의 보좌주교 2명, 그리고 함흥교구 및 덕원면 속구장 서리인 이동호 아빠스 등 18명의 회원으로 구성돼있다.
주교회의는 매년 봄ㆍ가을에 한차례씩 두번의 정기총회와 필요시 임시총회를 개최, 공동으로 사목교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한국교회의 제반 현안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한국주교회의는 의장(김남수 주교) 부의장(이문희 대주교) 총무(정진석 주교) 등 3명으로 의장단을 구성하고 있으며, 의장단 3명에 2명(윤공희 대주교, 김옥균 주교)의 위원을 추가하여 5명으로 상임위원회가 구성돼있다. 상임위원회는 매월 월례회의를 개최, 총회준비를 비롯 총회 위임사항 등을 다루고 있다.
한국주교회의는 사단법인 한국천주교중앙협회를 통해 일반 행정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 업무는 사무처(사무총장 1명, 사무차장 3명)가 주관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주교회의 산하에 교리주교위원회(위원장ㆍ김수환 추기경) 성직주교위원회 (위원장ㆍ윤공희 대주교) 평신도주교 위원회(위원장ㆍ지학순 주교)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ㆍ이문희 대주교)등 4개 상설위원회를 두고있는데 각 위원회별로 위원장을 포함 8~9명으로 구성돼있다.
그리고 가정사목위원회 교리교육위원회 교육위원회 교회법위원회 매스컴위원회 문화위원회 북한선교위원회 선교위원회 성서위원회 신앙교리위원회 이 주사목위원회 인성회 일치위원회 전례위원회 정의평화위원회 등 15개 전국위원회가 있다.
15개 주교회의 전국위원회는 각 위원회별로 위원장이 있으나, 4개 상설 주교위원회 에 성격별로 소속돼있다. 주교회의 임원 임기는 3년이며 일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도록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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