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를 말씀하실때마다 예수께서는 ①당신이 위로부터 (즉 아버지로부터)왔다는 것과 ②그리로(아버지께로) 다시 돌아 간다는 관계를 말씀하신다. 나는 생명수다라고 선언하실때도 그랬고 나는 빛이다라고 말씀하실 때도 그랬다. 이것이 장막절 설교의 주된 테마이다.
생명수대목에서는 『내가 돌아간다. 그 때에는 너희가 나를 찾아 다녀도 찾지못할것이고 나 있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그들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오늘 대목에서 그들이 왜 알아듣지 못하였는가를 밝힌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가 아버지께로 부터 오셨다는 것, 예수가 생명수라는것, 예수가 빛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께서 오셨던 곳으로 돌아 간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하느님 아버지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때는 놓칠 수 없는 마지막 남은 순간이다. 이 순간을 놓치면 사태는 심각하게 된다. 지금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때 믿음을 놓치면 기회는 영영 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믿지 않으면 영영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을 것이며 따라서 예수께서 가 있는 곳에는 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생명의 물을 제공하셨고 (요한 7, 38)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셨는데도 (요한 8, 12)그들이 끝내 마시기를 거절하고 고개를 돌려보기 싫어 한다면 그 자체가 풀려 날수없는 죄가 될 것이다. 여기서 단수로 표현되어 있는 죄는 근원이 되는 죄로서 요한신학에서는 불신의 죄를 뜻한다. 여타의 다른 죄들은 이 불신의 죄에서 연유되는 허드레 죄이다.
생명에 대한 불신과 거역은 모든 선에 저항하고 광명과 진리를 물리치게 된다.
생명의 길을 찾아 애쓰는 것은 곧 진리를 찾아 애쓰는 것이며 사람을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은 오직 진리뿐이다(요한8, 33)그러니 불신의 죄는 운명적으로 제 발로 죽음의 길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이 죄를 사해질 수 없는 죄라 하였고 이 죄는 성령을 거슬르는 죄라고 하였다 (마태12 31~32: 마르 3, 28~30: 루가 12, 10).
공관복음서에서는 성령이 하느님나라에서 하시는 일을 사탄에게 돌리는 순 악질적인 심보를 영원한 죄, 성령을 거역하는 죄라고 했다. 이 죄를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생명의 물이며 빛이라는 진리에 고개를 돌리는 죄, 즉 진리를 거역하는 죄라고 하였다. 눈을 감고 빛이 없다고 고집부리는 것과 구세주 예수를 믿지 않고 구원의 길이 없다고 하는 것은 같은 옹고집이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요한 7, 38)고 하실때 『너희는 내가 있는 곳에 올수없다』라고 했더니 그들은 저자가 이방인들을 찾아 가겠다는 말인가(요한 7, 35)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번에는 『나는 간다(믿지 않는 너희는)내가 가는 곳에 올수 없다』라고 하니까 그들은 저 자가 자살하려는가라고 비아냥을 떨었다.
그들은 비아냥속에서 저도 모르게 진실을 토로한 셈이 되었다.
과연 그리스도께서 떠나신 다음 그 제자들은 세상 끝까지 이방인들을 찾아가 전교하였고 예수께서는 자살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몸바쳐 십자가에 죽으셨다. 예수의 반대자들은 아래 세상에서 왔고 (악마의 세력을 가리킴), 그 세상에 속해 있는 반면 예수께서는 위에서 왔고 (하느님의 나라)위에 속해 있다.
이 아래와 위를 잇는 다리는 위에서 온 분을 믿는 것뿐인데 그들이 믿으려 들지않으니 그들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악마의 끼를 벗어 버리지 못하고 하늘의 열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들은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 십자가에 매달면서 악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일을 방조하게 될 것이고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하여 이방인들의 땅으로 내몰아 역시 악한 방법으로 하느님 나라의 전파를 돕게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장막절설교에서 얼마 남지 않은 앞날을 바라다보며 고별강론을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 그 고별사는 「나는 위에서부터 온자다」라는 하느님의 이름 (원문으로 <에고 에이미>나는…이다)을 알림으로 시작한다. 사실 이이름은 이미 세례자 요한이 예수를 두고 이 말을 하였다. 『위에서 오신 분은 모든 사람위에 계신다. 세상에서 나온 사람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 일을 말하고 하늘에서 오신 분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시며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요한 3, 31~2).
이 사상은 요한복음서의 서문에서 주제로 떠 올린 대목이기도 하다. 『말씀이 곧 참 빛이며 그 말씀이 이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었는데도…세상은 그분을 알아 보지못하였다』 (요한 1, 9~10)사도 바오로도 이 사상을 골로사이 인들에게 훈시로 써 보냈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올려졌으니 위에 속하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3, 1)믿음으로 위에 속하고 불신으로 아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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