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이번호부터 지상 신학강좌 제6편 「세계 교회사」를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최석우 신부의 집필로 연
재합니다. 지금까지 윤리신학을 집필해주신 최창무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서론
본론에 앞서 교회사의 개념, 교회사의 필요성, 교회사의 시대 구분 등 몇 가지 사전지식이 필요할 것 같아 먼저 이런 문제를 논하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갈까 한다.
교회사의 개념
교회사는 그말 그대로 교회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이냐 하면 먼저 교회가 시작된 교회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 다음 그 교회가 지난 2천년 동안 안팎으로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즉시간과 공간을 통한 교회의 발전이야기이다.
이 교회는 물론 그리스도가 세운 교회, 즉 그리스도 교회이다. 그러나 그 교회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불행히도 여러 교회로 갈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회사를 「가톨릭 교회사」나 또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사」등으로 구별하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 교회사」또는 줄여서 간단히「교회사」라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본디 그리스도가 세운 교회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교회사도 하나일 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교회사의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같은 그런 허무 맹랑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앙의 빛에서 인식되고, 학문에 근거를 둔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들은 이미 신학적으로, 역사학적으로 연구되고 고증된 역사적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신앙에서 인식된다는 말은 교회사가 곧 신학과 관계된다는 뜻이다. 교회사는 먼저 하느님의 행위를 통해 인간 역사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건설되어 가는 것을 연구한다. 이런점에서 교회사는 구원의 역사이다. 그런데 이 구원사는 오직 신앙에서만 인식될수 있는 것이므로 그 연구도 신학이 요구하는 원리를 따라야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사는 일반역사학과도 관계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지만 동시에 인간들로 구성되고 인간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가시적(可視的)인 제도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들의 행위는 역사연구의 대상이 될수 밖에 없고 또 그것은 사료(史料)를 통해서만 그 인식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사료들을 비판하는데는 역사학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방법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사는 또 이 역사학의 방법도 따라야한다.
이렇게 볼때 교회사의 대상은 한편으로는 「신앙의 교회」이고, 또 한편으로는 「역사의 교회」이다. 요컨대 교회사는 하느님과 인간의 합작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신앙의 교회」와 「역사의 교회」는 둘이 아닌 하나의 실체이다. 이리하여 교회는 인간들에 의해 변천하고 발전하는 반면, 하느님에 의해 그 본질을 유지하면서 불변의 것으로 지속된다.
교회사의 필요성
무릇 교양인이라면 자기가 속해 있는 단체의 역사를 알아야하는데, 그 역사가 오래고 빛난것일수록 그 필요성은 더해지고 또 그 역사를 알면 알수록 자기 단체를 더욱 사랑하고 더욱 자랑하게 된다.
우리 교회는 2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더러 전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또 그간 중세문화 같은 고유한 문화를 창조했고 나아가서는 세계사에 깊이 관여하면서 오늘의 서양문화의 모태 구실도 했다.
우리는 요즘 쇄신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쇄신은 전통을 기반으로 한다. 그르므로 교회의 역사나 전통에 대한깊은 지식이 없는 쇄신에는 그만큼 위험이 따른다. 교회는 새로 집을 짓기위해 기초까지 헐어버린 적이 없다.
역사가 하나의 교훈이라면 교회사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교회사에서 성인과 순교자들로부터 많은 교훈과 모범을 얻어낼 수있다. 만일 일선 사목자들이 그들의 강론시 이러한 구체적인 교훈을 예로 든다면 청중을 더욱 감격시킬 수있을 것이다.
우리는 교회사에서 소위「다행한 잘못」 (Felix Culpa)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깊은 의미와 오묘한 섭리를 깨닫게 되고 동시에 교회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지게 된다. 교회사도 성공과 실패, 발전과 후퇴, 성인과 죄인 등 기복을 이루면서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교회사에서 잘못이나 스캔들이 발견된다고 해서 숨기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다행한 잘못」이라는 관점에서 효과적인 변명이나 호교가 될수 있을것이다.
교회사의 시대구분
교회사는 연구 대상이나 그 분류에 따라 여러가지로 구분될 수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것이 연대순으로 구분하는 이른바 시대 구분법이다.
이 구분법에도 문제는 있다. 아무리 획기적인 연대라 할지라도 그 연대에서 한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단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새 시대는 이미 전 시대에서 부분적으로 시작될수있고, 또 구 시대로 새 시대에서 얼마동안 지속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이 일반적으로 애용되는 것은 아마 그 교육적인 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한 시대를 어떤 정신적인 흐름으로 통일하여 그 시대의 특성 내지는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킬 수있다는 장점일 것이다.
교회사도 일반 역사학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중세, 근세 이렇게 세 시대로 구분하고 있고, 또 그것을 구분하는 사건이나 시대적 정신적 배경도 비슷하다. 즉 고대의 종말을 초래한 민족대이동, 그리고 근대의 인간중심의 새 정신을 낳게한 문예부흥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느 연대에서 구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견해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특히 고대를 끝내게한 연대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하고 그래서 그 차이를 과도기로 해결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근대의 시작을 14세기이래 서양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서양정신의 본질적인 변화에 서 보려는데는 교회사가들도 의견을 같이 하지만 구체적인 연대에 대해서는 훨씬 뒤로, 즉 루터가 봉기한 1517년으로 잡는 것이 교회사가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필자는 이 1517년, 그리고 편의상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을 기준으로 삼고 아래와 같은 시대구분으로 다음부터 교회사의 서술을 시작하려한다.
고대교회사 (성신강림-476)중세교회사(476-1517)근 대교회사(1517-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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