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들이 사는 땅, 갈릴레아 바다 동쪽에서 다시 서쪽 팔레스티나지방 사람들이 사는 땅(여기서 사람들이란 유대아인들을 가리킨다)으로 다시 건너오신 예수께서는 그를 반기는 군중에 에워싸였다. 그 곳은 바닷가였다. 그 때에 야이로라하는 회당의 지도자중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그 앞에 엎드렸다.
마태오와 루가는 회당장이라고 했는데 유대아인들의 회당은 한 사람의 장이 있고 그 밑에 3명에서 7명의 공무원이 종교적인 집무에 임하고 있었다. 야이로라는 이름은「하느님의 깨우침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회당장은 구약시대의 본당신부에 해당되는 직위이다.
하여튼 야이로는 군중들과 함께 예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예수를 뵙자 다죽게 된 자기 딸을 살려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 부탁의 말씀은 사도들이 교우들에게 구세주 예수의 진가를 가르치는데 중요한 뜻을 지닌다.『집에 가서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그 아이가 살아나고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살아 난다라는 말은 복음서 용어에서 병의 치료와 함께 영혼의 구원을 동시에 뜻하는 말이고 생명을 얻는다는 말은 육신의 삶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함께 뜻한다. 공동번역에서『병을 고쳐 살려주십시오.』라고 한 것은 뜻의 일면만을 나타낸다. 오히려 영생을 강조하기 위하여 마태오와 루가는 죽은 딸을 살려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비약시켰다.
그의 청을 들어 뒤따라 가는동안 군중은 예수를 중심으로 앞뒤로 떠밀어가며 따라갔다. 꽤나 수선스러운 광경을 연상케 한다.그때에 12년동안이나 하혈병에 시달리던 여자가 몰래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그는 곧 병이 나았다. 그는 많은 의사를 찾아다녔고 고치느라고 가산을 탕진하며 고생하였지만 허탕이었다. 그 여자를 고치게 한 것은 그 여자의 신념이었다. 그 여자는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희망을 가졌고 군중 속에서 예수를 따랐으며 그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믿은 대로 감행하였다.
과연 힘이 빠져나간 것을 느끼신 예수는 그 여인에게『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평안히 가라』고 하시며 안심시켰다. 평안히 가라는 말은 예수 부활 후에 구원받은 제자들에게 쓰는 말투이다. 앞뒤로 밀치는 경황에서 예수께 누구라도 손을 댈 수 있었다. 그래서 누가 내게 손을 댔느냐고 예수께서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그 많은 사람들이 밀어대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느냐고 대꾸하였던 것이다.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감행하는 자만이 그 은혜를 입는다. 힘이 빠져나갔다는 표현은 은혜가 내렸다는 가시적인 표현이다. 여기서도「병이 나았다」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뜻으로 쓰여진 것에 유의해야 한다.
구원의 청원을 드린 야이로의 청원이 우선 이 여인에게 이루어졌다. 야이로의 딸은 죽음에서의 구원 즉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병을 고칠 때 손을 얹는 것은 병치유의 기적이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이 신체적인 접촉을 동반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뜻하며 사도시대의 가시적인 전례생활에서 하느님과의 접촉을 하던 성사집행을 예수의 기적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사도시대에는 병자가 생기면 교회의 원로들을 불러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게 하였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병자를 낫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야고5, 14). 귀먹은 벙어리에게 안수를 요청하는 대목은 여러 번 나온다(마르3, 10:5、6:6, 56:8, 23.25).외경인「빌라도 행전」에 따르면 하혈병 여인은 에레싸의 왕녀 베르니카라고 하며 12년동안이나 하혈병을 앓은 여인은 중년부인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혈하는 여인은 레위법에 부정한 여인으로 그와의 접촉은 금기사항으로 되어 있었다(레위15, 25). 하필이면 하혈하는 여인을 등장시킨 것은 금기에 걸린 여인의 구원을 강조 하려는데 뜻이 있다. 12년 하혈병의 여인과 12살난 야이로의 딸은 성베라에 의하면 12지파 이스라엘의 여인이 병들었다는 것, 즉 이스라엘이 죄지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딸이 죽었다는 전갈을 하며 예수께 가야 소용이 없음을 전한다. 이 이야기는 백부장의 요청, 죽은 나자로를 위한 마리아ㆍ마르타 자매의 요청의 경우와 같이 이야기 구성이 비슷하다. 예수는 죽은 자와의 접촉을 꾀하였고 생명의 주인이심을 드러내신다.
회당장의 집에서의 통곡과 소란은 그 집 딸이 확실히 죽었음을 입증한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 아버지에게『걱정하지 말라. 오직 믿어라』라고 말씀하시고 그 집으로 가서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시며 소생시키셨다.「달리다꿈」이라는 아라메아어를 인용한 것은 수리수리 마술이의 알아듣지 못할 주문이 아니고 모두에게 명확한「일어나라 소녀야」란 명령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이 집에 올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세제자만 대동하셨다. 이들은 타볼산에서의 성변용(마르 9,2), 겟세마니 동산에서 죽음에 직면한 마지막 고통(마르 14,33이하), 그리고 부활 후(마르9,9)의 모습을 증언한 목격자들이다. 사도교 회신자들은 이세제자들을 통하여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하였다. 이 소생은 구약의 엘리야(열왕상 17,17~24)와 엘리사(열왕하 4,29~37)가 복잡한 절차로 죽은 아이를 소생시킨 것과 대조된다.
하혈병의 여인과 야이로의 딸 이야기는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설교로 유명해졌다. 에라스무스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루터는 절망에 빠진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며「의사, 설교자, 수도원을 찾았지만 허사였고」오르지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죄인의 인의(認義)사상을 교묘하게 설교하였다. 이 이야기에서는 구원과 영생은 예수에게서 나오며 믿음은 그 조건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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