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꼴로레스」(빛과 함께!)를 힘차게 외치며 교회의 활성화와 신앙쇄신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는 꾸르실료.
비교적 단기간내에 꾸르실료는 한국교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일으켰으며 우리교회에 새로운 생명력과 활력소를 제공했다.
전국 곳곳에서 실천력있는 크리스찬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꾸르실리스따들은 주님의 정예사도로서 능동적으로 주님사업에 참여하여 그들 각자의 가정과 교회 일선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인식하고 있는 꾸르실료는 단체나 조직이 아닌 운동이다. 그때문에 깃발ㆍ뱃지ㆍ회비가 없고 오직 그 방법의 순수성ㆍ통일성ㆍ정확성을 지키기위한 엄격한 제도만 있다.
따라서 꾸르실료를 어떤 사도직 단체로 오인하고 팀회합이나 본당울뜨레야를 사도직 단체의 산하 조직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꾸르실료에서는 꾸르실리스따들이 사도로서 활동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만 시켜서 참다운 크리스찬생활을 영위하도록 할 뿐이고 꾸르실료운동 자체가 조직화돼서 어떤 특정한 사도직을 수행하지 않는다.
꾸르실료는 식어가는 크리스찬생활을 초대교회의 그 정열적인 신앙으로 불타게 만들기 위한「단기강습회」를 뜻한다.
꾸르실료는 참된 크리스찬생활을 구축하기 위하여 일하는 운동이며,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참된 크리스찬의 기본이 되는 것을 생활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정의된다.
크리스찬 기본의 생활화는 하느님과 개별적으로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와 친교를 갖게 하고, 형제적 사랑과 공동체의 정신을 일깨워주며, 사도직 활동의 사명감을 강조함으로써 구체화된다.
그러나 꾸르실료는 교회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구인「꾸르실료 사무국」이라는 조직이 있다.
꾸르실료 사무국은 지도신부를 비롯 주간ㆍ부주간ㆍ총무부ㆍ재무부ㆍ교수부ㆍ신심부ㆍ행사부ㆍ음악부ㆍ조직부ㆍ여성부등의 부서로 나뉘어져 평신도 임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꾸르실료의 목적은 진정한 크리스찬생활을 구축하기 위해 일할 사람들을 교육시켜 교회에 제공,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받치도록 하는 지주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3박4일간의 꾸르실료 교육을 받은 꾸르실리스따들은 신앙인으로서의 자기자신을 재발견하고 자발적으로 사도직 활동에 참여,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본당ㆍ액션단체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교회안에서 사도직활동의 꽃을 피우기 위해 탄생한 꾸르실료운동은 성직자와 평신도가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놀랄만큼 큰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꾸르실리스따들의 활약때문에 이 운동이 우리나라에 도입된후 빠른 속도로 전국에 확산됐다.
꾸르실료는 1949년 1월 7일 스페인 영토인 서부 지중해의 마요르까섬에서 마요르까 교구장이었던 후안 에르바스 주교에 의해 실시됐다.
처음에는 젊은 남성들만을 상대로 꾸르실료운동을 실시했으나 1951년부터 수녀회의 수련자, 1954년부터 장년남성, l96l년부터 여성에게까지 수강자의 대상을 넓혀갔다.
이렇게하여 일반화된 꾸르실료운동은 1952년 남미, 1957년 미국, 1966년 필리핀ㆍ일본, 1967년 우리나라에 도입됐으며 현재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보급, 세계 울뜨레야도 개최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꾸르실료운동은 제2차 바티깐공의회가 끝난 직후 공의회의 정신에 따르는 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청되던 시기인 1967년 5월 4일 필리핀 꾸르실리스따들에 의해 공식 도입、공의회정신을 구현하고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1967년 8월 24일 제3차 꾸르실료때부터 우리말로 꾸르실료를 시작, 인천ㆍ부산ㆍ전주ㆍ마산ㆍ광주ㆍ대구ㆍ청주ㆍ원주ㆍ수원ㆍ대전ㆍ춘천ㆍ제주에 이어 71년 8월 19일 안동교구까지 4년만에 전국 14개 교구에 전파됐다.
또 69년 11월 6일 부산교구와 71년 8월 12일 서울대교구에서 여성 꾸르실료를 실시하면서 여성 꾸르실리스따를 배출하기 시작, 89년말 현재 성직자 1천15명, 수도자 1천1백52명을 포함 남녀 꾸르실리스따는 총5만9백1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도 초창기에는 이질적인 문화권인 스페인에서 도입된 것이기 때문에 다소간의 오해와 비평도 있었다.
특히 폐쇄적인 교육방법과 유달리 많이 사용하는 외래용어, 꾸르실리스따들이 엘리트처럼 활동한다는 등의 문제점들이 있었으나 한국도입 23년을 지나면서 모든 것이 수용되고 보편화되고 있다.
꾸르실료는 3박4일의 듀링꾸르실료(During Cursillo)와 꾸르실료를 받은 후 그 신심ㆍ활동ㆍ공부를 지속시키도록하기 위해 몇 사람이 모이는 팀회합ㆍ몇개팀이 모이는 울뜨레야인 포스트 꾸르실료(Post Cursillo)가 있다.
현재 국내 꾸르실료의 가장 큰 당면 문제는 포스트 꾸르실료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점이다.
울뜨레야가 행사로 전락하는 경향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꾸르실료가 참된 자기쇄신과 교회쇄신을 위한 지도자양성을 위한 운동으로서 발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꾸르실리스따들에게 3박4일간의 꾸르실료보다 강도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이들을 교육시키는 방법이 모색돼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