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801년~1886년 사이의 목판본번역서 이번 조사에서 목판본으로써 저술이나 번역되어 나온 책 가운데 1801년 이전에 나온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번역물로써는 다음 3종이 있다.
①저자미상、성교요리문답、64張、1864년초간 白多瑪、역자미상、성교절요、109張、연대미상 ③토마스 아 캠피스、준주성범、4권4책、연대미상 그리고 저술로써는 다음 3종이 있다.
①정약종、쥬교요지、2권1책、1864년초간 ②안돈이、성찰긔략、51張、1864년초간、서울 ③저자미상、천주성교공과、1864년、초간
이상에서 볼때 한국 교회의 목판 인쇄소가 1859년 베르뇌 주교에 의해 설립되어 출판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에서 최초의 가톨릭 인쇄소가 발족했을 때 다블뤼 안주교는 그의협조자들의 업적을 불역(佛譯)한 것、특히 순교자들의 역사에 관한 수많은 기록들을 번역하여 프랑스로 보냈다. 그의 이러한 처사는 하느님의 섭리와도 같았다. 왜냐하면 그가 정성스레 수집했던 모든 자료들이 1864년 화재로 손실되었기 때문이다.
1864년 또하나의 인쇄소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는데 이 무렵 많은 출판물이 나오게 되었다. 즉 교리서、기도서、예절서、신심생활입문서、성인전、교리지도서、양심성찰기도서、호교서 등등이 출간되었다.
주로 다블뤼 안주교가 편찬하고 베르뇌 장주교가 검열하였다. 그중에는 베르뇌 주교가 절술하고 다블뤼 주교가 검열한 것도 있다. 그러나 조선에서의 종교서적 출판의 황금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평온해 보이던 시기에 1866년 돌연 격렬한 박해가 일어났다.
이 박해로 베르뇌 주교와 다볼뤼 주교를 포합하여 7명의 선교사가 희생되었다. 그러나 3명의 선교사 페롱(Feron)、델(Ridel)、깔레(Calais) 신부는 외방전교회 포교지인 챠꾸(遼東地方)로 피신할 수 있었다.
바、1801~1886년 사이의 활판본 서적
천주교 문서의 활판인쇄는 일본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나가사끼(長崎)에 있는 성서 활판소를 서울로 옮겨온 것은 1886년이다. 언제 일본 나가사끼에 성서활판소를 설치했는지는 정확치 않으나 1881년 선교회 보고서에 의하면「한불자뎐」「한어문전」을 간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두 책은「Echo du Japan」(일본의 소리) 이라는 잡지를 간행하던 레비(Levy)인쇄소에서 1880년에「한불자뎐」、1881년에「한어문전」을 각각 간행한 것이다. 또 선교회 보고서에는 일본에 있는 인쇄소는 중요한 봉사를 하고 있는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볼 때 나가사끼의 성서활판소는 1880년 이후 1884년 이전으로 볼수 있다
이외에도 이 시기에 저술된 책은 다음과 같은 것이있다.
① 안돈이、령세대의、25張、1882중간(1864초간)、나가사끼
② 저자미상、명광、10張、연대미상
③ 저자미상、망셰쟈입안례문、6張、
그리고 번역된 책은 아래와 같다
① 베르뇌역、성교감략、2권2책、1883
② 다블뤼역、신명초힘、2권2책、1882 중간(1864년 초간)
③ 역자미상、천당직로、47張、1884초간(1900、1915중간)
이상에서 볼 때 교리문답서、성서주석서、신앙생활 묵상서 등이 번역되었고 저술로는 호교서、교리서、예식서 등이 출판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일본 나가사끼에서 책을 출판하여 한국에 들여올 정도의 선교열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국천주교회창립의 시대적배경과 이 시대의 출판문화 종합
지금까지 한국교회 창립부터 한불조약으로 종교자유를 얻기까지의 출판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 시기의 특징을 들자면 우선 한글종교서적의 보급과 이로 인한 봉건제도로부터의 해방、언어학 발전에의 기여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한국 천주교는 그 창설기인 18세기 말부터「천주가사」와「성경직히」를 중심으로 이미 한글을 통하여 전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고 귀국한 것이 1784년인데、한글로 선교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보다 5년 전인 1779년경부터라는 것이다. 이 무렵부터 정약종의「십계명가(+誡命歌)와 이벽의「천주공경가」및 김원성의「警世歌」등 순 한글로 된 가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만채의「벽위편」에 의하면 정부는 1788년 충청도 일대에 한글로 번역된 교리서가 한국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교리서인「주교요지」가 정약종에 의해 저술되었고、이 무렵에 최창현에 의해 일종의 간추린 복음서라 할「성경직히」가 번역되었던 것이다. 1801년 신유교난 때 4명의 평신도 가정에서 1백20종 1백77권 1백99책이 압수되었는데、그 중에서 한글로 쓰여진 책이 83종 1백11권 1벡28책으로 전체의 69.2%를 차지하고 있다. 「천주가사」는 호교적인 목적과 신자 대중을 교화하고 신심을 함양하려는 목적에서 민중의 문자인 한글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가사와 형식도 조선 후기 대중가사의 주류를 이운 4ㆍ4조 형식을 취했던 것이다. 호교、대중교화、신심함양을 목적으로 한 이 가사들은 이벽、정약종、정약전、남상교등 당시 양반 신분에 있던 학자들에 의하여 제작된 것으로 최근까지 1백95편이나 발족되어있다는 것이다.
성서번역면에 있어서도 천주교의 한글문화에의 공헌은 뚜렷하다. 그것은 1790년경에 번역된「성경직히}」에서 한문으로 편찬된「聖經直解」와「聖經廣益」을 한글로 번역하여 이를 하나로 편찬한 것이다.
한문본 성경직해는 성서의 이해를 제1차적인 목적으로 하여 저술된 것으로 성서본문에 대한 주석과 성서귀절들에 따른 묵상자료의 제공을 위주로하고 있다는것이다. 이에 비해서 한문본 성경광익은 복음서를 실생활에 적용시키려는 것으로 의행지덕(宜行之德) 당무지구(當務之求)를 통하여 성서의 말씀과가르침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문본「성서직해」는 포르투갈 태생의 임마누엘 디아즈(Emmanuel Diaz、陽瑪諾) 신부에 의해서 저술되어 1636년경 북경에서 14권으로 간행된 책자이다. 한문본「성경광익」은 프랑스태생의 드멜라(De Mailla、瑪?正) 신부에 의해서 저술되어 1740년에 북경에서 2권2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오세완
<神父ㆍ매스컴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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