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혼인 및 이혼 통계 작성 결과」에 따르면 해마다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고, 특히 결혼 5년내의 이혼율이 40%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결혼후 이혼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지 않으면 안되었던 당사자들의 아픔과 나름대로의 이유가 없을 수 없겠으나, 이혼율의 급증은 우리 모두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음도 부인해서는 안될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몇가지 자료들을 좀 더 자세하게 분석해보면 우리의 정도는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이혼이 어제 오늘 갑자기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 것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혼율의 급증을 보도하는 언론매체들은 그 원인을 나름대로 지적하고 있다. 예를들면, 전통적인 가족관과 윤리관의 퇴색, 여성의 경제 자립도의 향상, 부부불화, 가족불화, 건강문제 그리고 경제문제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피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좀더 진지하게 그 원인을 규명해볼 필요가있다.
이혼의 급증 현상은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여러가지 구조적인 병리현상 가운데 하나의 현상이라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그 동안 우리 사회는 배고픔을 이겨내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해 놓고 뒤를 되돌아 볼 여유도 없이 앞으로 달려왔다. 그 결과 이제는 배고픔에 시달려야만 하는 과정으로 부터는 해방되었다.
하지만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목표 실현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 가치 등 수 많은 소중한것들을 잃어 버렸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왔던 이러한 소중한 가치들을 포기한 결과 우리는 정신적인 황폐함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의 목표는 나름대로의 정당성과 절박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또 다른 우상을 숭배하도록 우리를 강요하고 있다.
모든 사물과 가치를 물질이라는 기준에 의해 평가하도록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다. 물질의 소유 그것은 곧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물질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수 있은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마저도 얼마나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평가되어왔다.
인간을 물질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인간은 이제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 매매하고 교환 할수 있는 상품으로 보일뿐이다.
혼수품을 적게 마련해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편과 그 가족으로부터 학대받고, 폭력에 시달리는 아내들의 문제가 사회문제화 된바 있음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있다. 결혼을 물질이라는 잣대로 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인간을 철저하게 배제해버리는 탈인간화의 전도된 가치를 추구해왔고, 오늘이라는 현재만을 절대화 시키면서 내일이라는 미래를 외면해 버리는 비역사적인 가치를 추구해 왔다. 오늘의 포만감이 내일에도 여전히 계속되라라는 기대속에서 추구되어 온 전도된 가치관의 댓가를 지금 우리는 치루고 있다. 내일이라는 미래를 염려하지 아니하고, 오늘이라는 현재만을 절대화시킨 전도된 가치의 추구는 순간과 찰라의 사고만을 우리에게 심어주었다.
내일이 없는 삶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을지는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이미 죽은 상태에서 삶을 연명해갈 뿐이다. 내일이 없는 사람들의 결혼 역시 순간적이고 찰라적인 양상을 띠울뿐이다. 순간적이고 찰라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이루어지는 결혼이 오래 지속된다는것 자체가 비정상일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이혼의 급증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 아닐까?)
이혼의 급증을 걱정하면서 결혼에 대한 참된 의미를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결혼은 단순히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가꾸고 성숙시켜야 할 과제이다. 인격체로의 인간은 다른 인격체와의 만남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한다. 인격체의 만남인 결혼은 예속적이고 지배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조적이고 상호적인 관계위에서만 성립된다.그러므로 남자와 여자의 상이성을 경쟁과 적대의 현실로 이해할것이 아니라 보조와 조화의 현실로 이해해야 한다.
결혼이라는 삶의 공동체를 지탱해주는 지주는 부부 서로간의 신뢰와 사랑이다.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 순간적이고 찰라적인 스침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영속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부부 상호간의 신뢰와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 신뢰와 사랑은 결혼에 도전하는 온갖 불확실성과 불안을 극복하게 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그 시작부터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부가 각자의 이기심과 아집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서로를 향해 부단하게 자신을 개방시키는 헌신을 통해 점진적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완성의 과정에 갈등과 마찰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갈등과 마찰을 이혼이라는 수단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스스로 신뢰와 사랑의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는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너의 현재의 모습만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그칠것이 아니라 너의 초라했던 과거의 모습 그리고 초라한 모습으로 다가올 미래의 너의 모습까지 미리 앞당겨 신뢰하고 사랑하는 힘이 결혼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신뢰와 사랑으로 만난 부부는 지속적으로 신뢰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가꾸면서 자신들의 결혼을 성숙시켜야한다. 상대방을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위해 나를 죽이고 희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그것은 또한 자기 중심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자신을 상대방을 향해 물처럼 흘러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을 물질처럼 장악하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있음 그대로」를 그리고 상대방의 「이렇게 있을수 밖에없음」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는 바로 이러한 의미들을 성사적으로 구체화시켜 결혼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을 가르치고 있다.교회의 이러한 가르침이 이혼의 급증을 저지하는데 기여할수 있기위해 우리 모두의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고, 적절한 대안의 제시를 위해 구체적인 실천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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