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서에서 「유대아인」들은 대개 예수의 적대자 또는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는 관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여진다. 그러나 그말은 일반 민중을 가리킬 때도 많다. 이들은 예수의 기적을 보고 또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은 사람들로 소개된다(2.11· 23:3, 2 :4, 53: 6, 26: 7, 46).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예수를 따라 다닐만큼 굳건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마음을 줄수는 없었다(요한2, 24).
그들은 근본적으로 예수의 제자가 될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과 율법이 생활의 전부였고 이 정신을 이탈하는 것으로 보이는 예수를 따르는 것 그 자체가「유대아인」임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상황은 사도시대에도 계속되어 그리스도교를 개종한 유대아인들이 섞인 초대 그리스도교시대에까지 계속되었다. 유대아인들과의 예수의 논쟁을 소개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었다」고 한 마디씩 삽입한 것은 그간의 교회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다.
오늘의 대화에서도 예수께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참 제자가 되고 노예상태에서 자유롭게 되려면 당신의 말씀을 새기고 그 안에 머물어야 한다고 했을때 그들이 예수께 대들고 심한 논쟁을 벌이는 광경을 위와같은 요한복음서의 유대아인관에서 알아 들을수 있다.
「내 말안에 머문다」는 예수의 말씀은 우리 말이 잘 되게 표한하느라고 공동번역에서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라고 번역하였지만 요한 복음서 5장 38절에 「하느님의 말씀이 그 안에 머문다」라는 말과 뒤집어 이해할수 있는 말이며 요한 2서1장9절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시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한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안에 온 생활을 내 맡기고 하느님이 그 안에 사시는 사람이야 말로 예수의 진정한 제자이다.예수의 제자들은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다. 사람이 되신하느님의 말씀(요한1, 14)을 마음속에 간직한 제자들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하면서 「진리가 무엇이냐」(요한18, 38)고 묻고는 두려워서 밖으로 나가 버렸지만 「나는 진리다」라고 말씀하실 때 진리와 생명과 길을 같은 등식으로 묶어서 명확하게 말씀하셨고 그러므로 「진리편에 서는 사람은 내말을 듣는다」 (요한18, 37)라는 말씀을 새겨들어야 한다.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은 「나다」라는 하느님의 이름을 지닌 분이 예수라는 것을 믿는데서 굳어진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빵이다」,「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정녕하느님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에 유대아인들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들에게 종살이란 여러번 오랫동안 외국의 점령하에서 민족적인 종살이를 해온 처지이다. 그들은 에집트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바빌로니아에 끌려갔었고 지금은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번영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그 약속의 은혜를 받는 것은 율법의 힘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들은 그 오랜 외세의 질곡속에서도 노예생활은 언젠가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을 해방시켜 줄 힘은 율법외에 다른것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은 민족적인 신앙이었다. 그런데 진리가 자유를 준다니 말도 안되는 헛소리다. 더군다나 진리운운하는 것은 이교도 그리스인들이 만사에 입에 올리는 소리가 아닌가. 유대아인들은 예수께 대들었다.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누구의 노예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자유롭게 해 준다니 무슨 소리냐는 것이였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이웃 대국의 점령으로 억압을 받아온 사람들이 왜 남의 종살이를 한 적이 없다고 했을까. 그들은 비록 정치적으로 남의 식민지노릇을 해 왔지만 언제나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을 잇는 정통 하느님 선민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종노릇하는 국민으로 생각치 않고 권토중래, 다시 일어나 지배국민이 될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라고 큰 소리를 쳤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하느님나라 사상을 고치는데 무진 애를 썼다. 세례자 요한의 첫 등장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내세우는 유대아인들을 향하여 그 알량한 아브라함의 자손따위는 입밖에도 내지 말것과 하느님은 이미 돌을 가지고 새 자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심히 나무란 바있고(마태3, 7~10), 예수께서도 이 나라 사람들은 천상잔치에서 쫓겨나고 이국인들이 아브라함과 함께 잔치자리를 같이 할것이다라고 경고한바 있다(마태8, 11~12).
오늘은 예수께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신다. 종살이라는 것은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종살이를 말하는것이 아니고 죄의세력에 끌려다닌것을 말하고 세속적인 종살이는 저지른 죄값을 치르는 잠정적인 것으로 의미가 있지만 죄의 종살이는 영원한 죽음으로 빠지는 허무맹랑한 고역이다.
그러니 죄의 노예로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이 종살이에서 구원되는 방법은 진리를 깨닫는것뿐이다.그 진리는 은총과 진리로 충만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참모습을알리러 오신 그 아들을 알아보고 따르는 믿음의 순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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