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어머니의 얘기를 들으면서 「비디오 공해」를 또 한 번 실감했다.
국민학교 5학년과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두 아들은 건강하고 착해서 말썽을 피우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큰 아들이 중학생이 되자 대견한 마음과 함께 다른 어머니들처럼 공부를 잘하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에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만을 소원했고 기회만 있으면 이들 부부는 그런 얘기를 아들에게 해주었다. 아들은 그때마다 몇 번이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기막힌 일이 생기고만 것이다. 둘째 아들이 일기숙제를 하기에 옆에서 지켜보던 이 어머니는 석연치 못한 내용을 보게 된 것이다.
「형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한다. 세 명이 엄마방에 들어가서 안으로 문을 잠그고 열심히 공부를 한다. 동생인 나를 절대로 안방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막고 열심히 공부를 한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켰을 리가 없는 데 여자소리 같은 것이 난다…」방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척 궁금하고 자기를 따돌리는 일이 무척 속이 상한다는 얘기였다.
당장에 사건전모는 드러났다. 예감했던 대로 큰아들이 성인용 테이프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러차례였다는 것이다. 크게 꾸짖는 소란을 피우진 않았지만 어머니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그보다도 앞으로 어떻게 지도하느냐가 큰 과제라 했다. 남편은 아이들을 무섭게 다루기 때문에 당분간은 숨겨야 할 것 같다는 어머니의 얘기에 나도 일단 찬성한다고 말했다.
약속된 날에 두 번째로 그 어머니와 다시 만났다. 그날은 아이가 쓴 진술서(?)를 가져왔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그런 이상한 그림을 처음 보게 되었다고 쓰기 시작했다. 「친구네 집에 비디오테이프가 많은데, 그 친구의 부모님이 안 계신 날 그 친구집에 갔을 때 둘이서 보았다. 가슴이 몹시 뛰었다」고 썼다. 아이들이 보면 안 될 것들을 잘못 보관했기 때문에 예기치 못했던 일이 생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그 후에 알고 보니 친구들은 이미 사진이나 그림책을 본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호기심을 누르기 보다는 자기또래끼리 테이프를 구해서 보는 방법을 동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6개월이 넘게, 기회가 오면 몰려다니면서 그런 퇴폐적인 놀음에 젖어있었는데 그들 부모님들은 모두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비디오의 용도가 그야말로 최첨단으로 비약된 것이다. 드디어 어머니가 울먹였다. 『이번 일을 알고 나니 아이가 징그럽게 느껴지고, 예전과 같은 순수한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슬퍼요, 제 마음을 저도 모르겠어요. 』
이런 때 암담한 심정이 되어 주저앉으려는 기분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주 않아 있는 이 어머니의 눈을 깊게 바라보았다.
지금 댁의 큰 아이의 어려운 문제를 정리하자는 서두를 꺼내고 나서 문제점을 함께 꼽아 나갔다. 우선 친구들과 함께 비디오테이프를 준비할 용돈의 마련을 위한 작은 거짓말을 자주 했었다는 것. 그러나 어머니 몰래 지갑을 뒤지거나, 몰래 가져간 적은 없었다는 점. 천만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다른 장소(만화가게 등)에서는 절대로 그런 필름은 보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부로 떨어져 나가지 않은 건 천만다행하다는 걸 그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부모의 품을 벗어난 아이들은 이미 미아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어머니에게 과제를 주었다. 주말에는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수영과 같은 실내운동을 꾸준히 시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학업에 힘을 기울일 때라는 걸 강조한다는 내용이다. 며칠 전 Y본당 어머니교실 강의도중 한 어머니로부터 『아이가 성인용 비디오 그림을 본 것 같다』는 질문을 받았다. 이런 일로 난감해하는 부모가 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꽃이 피지도 못한 채 비디오 공해에 시들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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