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부의 쌀 수매가 결정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농민들은 애간장이 탄다.
정부는 생산자인 농민들의 쌀생산비 보장요구를 재정형편이라는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외면하고 있다. 쌀 수매가 결정또한 수매가 정책이 필요한 수밖에 없는 정치사회적 의미는 배제된 채 수매가의 인상율과 수매량의 문제로 국한되고 있다.
이같이 쌀 수매가 문제를 주로 경제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는 것은 여야 정치인이나 일반국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여야 정치인들의 속셈이란 수매가 또는 수매량을 몇%로 올려서 농민들에게 얼마만큼의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고 생색냄으로써 다음 선거에서 표를 많이 받아보려는 것에 불과하다. 이미 도시 가계비지출에서 쌀 소비 비중이 5.5%에 불과한, 농민을 제외한 일반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쌀값 몇푼의 인상문제는 그리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이제 쌀 수매가가 확정되고 며칠만 지나면 농민들의 가슴에 실의와 한과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채 또 그렇게 넘어갈 것이다.
쌀 수매가 문제가 단지 농민들만의 문제이며 쌀값의 정당한 보장의 요구가 농민들의 단순한 경제적인 이익을 위한 주장에 불과한 것인가.
올해는 쌀 수매가 결정에 대한 농민들의 요구가 어느때 보다도 활발하고 심각하다. 추수파업이란 형태의 투쟁이 시도되는가하면 각 지역에서 집단적인 행동이 계속되고 있다.
양특적자 등 재정문제를 이유로 내세운 정부의 논리나 국제 쌀값의 비교 등을 내세운 논리에 농민들이 오히려 분노하고 목쉰 항의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쌀 몇 가마 더 수매하고 돈 몇푼 받기 위한것 때문에 추수도 포기한 채 들판에서 거리로 나서는 것인가.
쌀 문제, 쌀값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 없이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은 해결될수 없음을 이제 우리 모두는 자각해야한다. 쌀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요, 사회의 문제요, 우리 국민 모두의 생존의 문제이다.
농가소득의 28.1% 농업소득의 49.4% 주곡 생산액의 82.4% 차지하며 전체 경지면적의 59%, 전체 농가의 85%에서 재배되는 쌀농사는 분명 농민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소득원이자, 농사 그 자체로서 농민의 생존을 좌우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자 농민에게 있어서 쌀 수매정책이란 그것으로 인한 경제적인 이익 못지않게 더욱 중요한 것은 쌀이 어떻게 정치사회적으로 대접을 받는가, 그 중요성과 가치가 인정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쌀이란 곧 농민들의 상징이고 분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산비를 보장하고 농민이 원하는 양을 전량 수매하라는 요구는 농민의 생존을 보장하고 농민들의 정치사회적 권리를, 농민의 인간다운 삶과 존재가치를 인정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농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생존과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본질적인 요구가 납득할 없는 양특적자 등을 이유로 한 경제적이해관계 문제로만 바라보려는 정책당국과 정치인들의 인식과 자세 때문이다. 정책적 잘못으로 누적된 양특적자와 정부 재고미를 마치 농민들의 책임인양 전가하려는 것에 분노와 실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쌀 문제가 농민만의 문제인가.
쌀농사 없는 한국의 농업, 농촌, 농민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쌀밥을 먹지않는 한국국민들 또한 상상할수없다. 쌀이 곧 밥이고 생명이자 하늘이라는 의미처럼 쌀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규정하는 것을 쌀문화를 떠나서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삶자체를 이야기할수 없을 만큼 쌀은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즉 쌀은 농민에게 있어서 농사 그 자체로서 농민의 생존을 좌우하는 것일뿐 아니라 국민에게 있어서는 생명줄인 주식이요, 민족의 삶과 문화를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것이다.
쌀농사가 없어졌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은 곧 이땅의 농업의 포기와 농촌의 말살을 의미한다. 개구리 울던 논두렁, 가을 황금들판이 사라지는 것도 물론 우리 모두의 고향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환경생태계 파괴로 인한 인류생존의 위협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이 시대, 이제는 농업이 갖는 자연환경보존 효과를 식량의 생산이란 상품생산의 경제적 가치보다 더 우선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농민들이 벼농사를 포기하면 논 1백30만정보가 갖는 23억톤의 홍수조절을 위한 댐을 막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 해마다 1조원이상의 국민 세금이 부담되어야한다.(이는 현재 소양강 등 6개 홍수조절용 댐의 조절량의 1.5배이며 충주호 규모의 댐 4개 이상을 건설해야 한다)
이 한가지만 보더라도 수매가 결정에 있어서 정부재정의 논리라는 것이 얼마나 단견인가하는 것을 알수 있다.
올해 수매가가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미국의 쌀시장 개방압력 등과 관련하여 지금 우리나라의 농업이 사활의 기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쌀시장 개방여부는 칠백만 농민의 생존 뿐만 아니라 이땅 사천만 국민의 삶에 있어서 가히 사활이 걸린문제이다. 쌀시장이 개방될 경우 그 폐해는 한국농업의 포기와 식량의 영원한 대미종속과 정치경제적, 사회적인 심각한 위기를 낳을 수밖에없기 때문이다.
올해의 수매가 결정은 바로 이같은 위기 상황속에서 정부와 국민들이 과연 국민의 생존과 민족의 자주와 자립을 위한 의지와 결단을 갖는 것인지를 시험하는 중요한 계기가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수매가와 수매율의 몇% 흥정이 아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쌀시장 개방만은 막아내겠다는 확고한 정책의지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민적 노력, 그리고 농업정책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이다.
그것이 이번 쌀 수매정책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쌀값 보장은 이제 전체국민의 생존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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