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노예와 그 해방에 관하여는 사도 바오로의 산학이 이 대목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죄의 거대한 귄세가 세상에 스며들었고 권세는 그 때부터 세상에 폭군처럼 세력을 행사하고 있다.
로마서는 인간의 죄상을 고발하면서 죄는 모든 사람을 압도하며 노예로 삼는 무서운 폭력이라고 말하고 이 힘을 다스림 자는 하느님의 구원을 다스릴 자는 하느님의 구원의 힘밖에 없음을 밝힌다(1장~3장).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하지만 불멸의 하느님대신 썩어 없어질 인간을 섬기거나, 심지어는 새, 짐승, 뱀따위를 섬기는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짓을 서슴치 않는다. 인간이 이렇게 우둔할 수가!
그 우둔함의 결과는 온갖 종류의 죄악속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올바른 판단력을 잃고 온갖 부정부패에 빠졌고 탐욕과 악의에 가득차 사기, 살인, 분쟁, 질투, 교활한 짓을 일삼고 있다. 숙덕공론으로 남을 헐뜯고 하느님을 미워하고 포악하며 오만하고 허세를 부리며 고약한 짓을 꾸미며 부모에게 거역한다. 그들에게서 분별력, 신의를 기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며 인정사정없이 무자비하다(로마1, 24~31).
이것이 아담 한 사람의 원죄의 결과로 인간이 빠져든 인생조건이다. 이같이 죄의 폭력이 휘두르는 폭군의 왕국에서 인간은 분명 가련한 노예이며 자기 스스로의 힘이로는 도저히 그 권세에서 벗어날수가 없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끝내 죄에 고집한다면 죄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사도 바오로는 이 사상을 받아들여 「죄의 품값은 죽음이다」(로마6, 23)라고 외쳤다.
인간이 죄의 폭력에 끌려다니는 인간비극과 그 결과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는 무기력상태에 빠지고 만다. 사도 바오로는 이 상태를 고백하면서 『내가 하는 일을 나 자신도 이해할수 없다. 내가 해야겠다고 하는 일을 나는 하지 않으며 내가 싫은 일을 나는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 행동을 하는 자는 내가 아니고 나안에 머물고 있는 다른 자가 있음이 분명하다.
나라는 육체안에는 선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올바른 것을 원할수는 있어도 그것을 행할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선행은 내가 하지않고 내가 원하지 않는 악행은 내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내가 행한다면 행동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나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임이 틀림없다』고 했다(로마7, 15~20).
예수께서 죄의 노예상태에서의 자유해방을 말씀하신 것이 실감이 난다. 사도 바오로는 이 구원의 말씀을 역설하면서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되었음을 가르쳤다. 죄의 지배를 받으며 신음하던 묵은 사람은 인제는 십자가에 달려 파멸되었고(로마6, 6)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로마6, 4)고 외쳤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이제는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죄이 되었으니(로마6, 22)이 종살이는 이제는 보호이며 축복이다.
예수께서 아브라함의 후예라고 자만자족하는 유대인들에게 그 특권이 상실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그들은 죄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식이었지만 여종의 몸에서 난 이스마엘은 그 어머니 하갈과 함께 집에서 쫓겨 났다. (창세21, 1~12) 『좋은 집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는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사방에서 모여 들어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겠으나 이 나라 백성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마태8, 11~12). 그들은 남을 해지는 것을 일삼으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큰소리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집에 영원히 머무르는 자유의 자식은 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된 자식이다.
참 자유의 자식이 어찌 예수를 죽이려 하고 있겠는가. 사도 바오로는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이 약속을 하신 대상이 아브라함의 후손인데 그 후손은 다름 아닌 예수 그 후손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논거를 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실 때에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후손들에게」라고 하지 않고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네 후손에게」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갈라3, 16). 유대아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처하면서 하느님이 지칭하신 바로 그 아브라함의 후손을 죽이려고 모함을 꾸미는 것은 그들이 자격없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도시대 교회에서 유대아교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간에 하느님의 약속의 후예들이 누구인가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되었는데 바오로는 참된 아브라함의 후예는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가르쳤다 『여러분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면 여러분이 바로 아브라함의 후예들입니다』(갈라 3, 39).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을 죄의 종살이에서 풀려나 진리의 종이 되어 진실한 가르침을 전해 받고 성심껏 복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6, 17).
그러니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말을 받아 들일 마음의 여우가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가 되는 정신자세를『내말을 간직하라』는 말씀으로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요한 15, 7). 족보상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지만 그들은 그 행실에서 후손자격을 잃었다. 그들은 혈연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지만 행실에서는 죄의 노예들이니 악마의 후손들이다. 그러니 아브라함 자신이 그들을 배척할 것이다(루가 1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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