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아인들은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바락바락 악을 쓴다. 그것은 예수께서 사람은 말과 행실을 보고 그 아비를 알아볼수 있다고 하시며 그들의 말은 거짓이요 그들의 행실은 악하니 알아서 생각해야 할것이라고 일침을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진리를 전하는 예수를 보고 곧 그 아들임을 알아봐야 하는데 고개를 돌릴뿐 아니라 그를 오히려 죽이려고 하니 그들은 거짓의 자식들이며 악의 후예들이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사자(使者)를 그렇게 취급하지는 않았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문턱에 앉아 있다가 나그네 세 사람을 보고 자기 집에 영접하여 물을 길어다가 발을 씻게하고 빵을 굽고 송아지를 잡아 손님들을 대접한 기사를 유대아인들은 익히 알고 있을것이다(창세18, 1~8).
아브라함의 후손됨이 자랑스러운 것은 혈통을 이어 받았다 해서가 아니고 하느님이 약속하신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데 있으며 그것은 영성적인 자녀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뜻으로 사도 바오로도 아브라함의 후손 논쟁에서『아브라함의 후예라 해서 다 아브라함의 후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로마9, 7).
영성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사상은 사실 이미 유대아의 올바른 사상에도 나타나 있었다:「우리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참 제자가 되는 표는 착한 눈과 겸허한 정신과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니 진리앞에 눈감고 하느님의 사자를 죽이려는 악심을 품은 그들의 아비는 분명 악마이다.
여기서 혈통적인 후예논쟁은 영성적인 후예논쟁으로 넘어가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은 성서(구약)를 알아 듣는다면 하느님의 약속에 따른것이지 단순히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아니라는것이다. 그런데 유대아인들은 혈통은 자손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진의를 저버리고 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때 먼저 그의 이름을 바꾸었다. 「높임받는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람을「만민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였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참자손 자격은 아브라함을 따라 순종하는 정신과 믿음으로 식별된다.
혈육에 따라 거짓을 일삼는 그들은 아브라함의 참자녀일 수가 없는것이다 거짓의 인간은 궁지에 몰려도 할말이 많다. 거짓을 말하면 되니까 그들은 예수께 반격하였다:『우리는 사생아가 아니다』라고 이 말은「우리는 너처럼 사생아가 아니라」라는 적반하장의 뒤집어 씌우기 논법이다. 그들은 악마의 자식들이라는 말을 듣고 자기들이 사통(私通)의 소생으로 몰리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사실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고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사통의 자식들」이라고 불렀다(호세2, 4). 그래서 그들은『우리의 아버지는 하느님뿐입니다』라고 대들었다. 이제 논쟁은「하느님의 자녀」로 옮아 가고 있다. 누가「하느님의 자녀」이며「사통의 자식」이냐하는 논쟁은 초대교회까지 계속되었다. 외경문서인「빌라도행전」에는 유대아인들이 예수께「당신이야 말로 <사통의 자식>이요」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고(출애4, 22) 야훼는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었다(신명32, 6)」. 라는 성경말씀을 생각하며 자기들의 아버지는 하느님뿐이라고 큰 소리쳤던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은 이러하다. 그들이 혈육을 따라소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은 그행동에서 아버지를 닮아야 한다. 그러니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봐서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들은 한 사람을 개종시키고는 자기들보다 더 갑절이나 더 악한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고 있으며(마태23, 15) 밀밭의 가리지와 같이 악한의 자식들이다(마태13, 38~39). 왜냐하면 그들은 악을 일삼으며 살았고 악마는 처음부터 악한 자였기(요한1 3, 8)때문이다.
예수는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함께 일하시며(요한1, 1이하) 그분의 일을 하러 이 세상에 오신 바로 그분임을 처음부터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그 아비(악마)의 욕망을 따라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 그 아비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쪽에서 본적이 없는자로서 거짓말을 하는것이 그의 본성이다. 그러니 그들이 하느님께로 부터 와서 지금 여기 있는(하느님)예수를 알아 볼리가 없다. 그들은 정녕 거짓말장이이며 거짓말의 명수를 아비로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속임수로 첫 사람을 죽음에 빠뜨리는데 성공한 악마는 새로운 첫 사람 예수를 다시 죽이려고 몰고간다. 유대아인들은 악마의 자식답게 제 아비의 일을 기를 쓰며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식간의 식별이 분명해졌다.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께로부터 왔고 그는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를 말한다. 그 반면에 악마의 자식은 거짓말을 하며 거짓말은 진리와 상반된다. 거짓말은 죽음을 가져왔고 진리는 생명을 가져다 준다. 거짓말은 암흑이며 진리는 빛이다. 속임수의 거짓말은 육신을 죽이는데 성공하겠지만 생명의 나라에 들어 가지는 못한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두움이 어찌 자리잡겠는가. 악마는 거짓말로 사람을 속여 죽게 하면서 스스로도 속고 있다. 그가 끼치는 해악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주기 때문이다.
요한 I서는『누가 거짓말장이인가?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그는 그리스도의 반대자이며 아버지도 믿지 않고 아들도 믿지 않는 자이다』
(2,22)라고 하였다. 악인은 빛을 싫어 하고 진리의 사랑은 빛을 따라간다(요한3, 20).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진리를 따라 산다(요한Ⅱ, 1, 4:Ⅲ,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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