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한국인 2세에게『고향에 가고 싶지 않느냐』고 질문했더니 그는『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서 여기가 좋다. 나의 아버지도 지금 이곳 생활이 일제시대에 비해 매우 안정되어있고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낼 수 있으므로 이곳 사할린에서 사는 것을 무척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아버지가 살았던 그 당시의 한국은 가난이 무척 심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면서『아버지는 일본식민지시대 때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이곳 사할린에 끌려왔지만 지금 일본의 박해로 인해 당한 고통을 생각할 때 사할린에 끌려온 것이 불행 중 다행한 일이라고 늘 말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만일 지금 일본에 살고 있다면 조국인 한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상태이고 또 일본내에서는 제일 한국인이라고 해서 생활ㆍ취업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인과 차별이 심해 생활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고향은 어디까지나 고향이기 때문에 조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곳에서 살 생각은 없지만、언젠가 한번은 꼭 고향에 가보길 원하고 있다』면서 그의 아버지의 고향은 대한민국 경상남도라고 밝혔다.
그러나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지금, 사할린은 소련영토가 됐고 경상남도는 대한민국 영토인데 전쟁이 끝난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ㆍ소 양국간에는 국교가 수립되어 있지 않고 상호왕래도 없는 실정이어서 이들의 소원인 죽기 전에 꼭 한번이라도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아픈 묘한 느낌을 받았다.
전쟁도 끝나고 과거 식민지배도 끝났지만 이곳 사할린에서는 그때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할 때 나는 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매우 부끄럽게 여겨졌다.
“친족 만나고파”
어느날 나는 레닌광장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보도(步道)에 의자를 놓고 한국인 노부인들이 꽃과 김치를 팔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 한 사람 한사람에게『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일본어가 유창한 노부인 한 사람이『그런 것을 묻고 있는 당신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노부인의 말 가운데는 일본에 대한 증오와 또 다른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음을 느꼈다.
또한 노부인은『내 나이가 65세인데 조국인 한국에 무척 돌아가고 싶다』면서 그러나 한국과 소련은 아직 미수교국(未修交國)이기 때문에 방문도 할 수 없고 더군다나 친족들에게 편지도 보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내가 사할린을 방문하는 동안 절실히 느낀 것은 같은 한국인이라도 1세와 2세의 사고방식이 틀리고 더욱이 3ㆍ4세와는 매우 상이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으며 1세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고향에 가서 친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사할린 잔류 한국인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일본은 현재 소련ㆍ한국과는 각각 수교를 맺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전후 45년이란 긴 세월의 흐름이 묘하고 복잡한 국면을 창출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사할린을 방문하기전 사할린 잔류 한국인문제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이미 읽어 본적이 있었지만 사할린을 직접 방문하고 현실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 나는 내 자신이 크리스찬임을 잊지 않고『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강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전세계 곳곳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는 진심으로 화해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하느님이 나에게 화해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삶의 방향을 가르쳐 주셨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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