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범죄와의 전쟁, 새 질서 새생활 운동, 환경보존운동, 얼마나 절실한 외침입니까? 종교인구가 늘고 양심세력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 사회에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교쳐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님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있는 이 모든 사회 혼란은 인간성 상실에서 기인된 것이며 인간성 상실은 가치 질서 전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에 우리 주교들은 인권주일을 맞이하여 인명존중의 새 문화창조를 모든 신자들과 선의 의 국민들에게 호소하고자 합니다.
인명의 존엄성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인간은「하느님의 모상을 따라」창조되었고, 창조주를 알아 사랑할수 있으며, 창조주로부터 세상만물의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만물을 다스리고 이용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존재입니다(창세기 1, 26:지서2, 23:사목12참조). 시편에도 『당신 손으로 만드신 것들위에 사람을 세우시고 모든 것을 그 발밑에 굴복시키셨나이다』(시편8, 7)라고 하였습니다.
구원된 인간의 품위
인간은 창조된 순간에 이미 자연적 인간생명 이외에도 초자연적 생명인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았으며, 하느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과 완전한 행복을 차지할 소명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자유를 남용하고 하느님께 순종치 아니하여 죄를 범하였어도 하느님께서는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인간을 구원사시고자 친히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시어 인간을 다시 살리시고 의로운 지위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혈육을 취하신 말씀의 신비를 떠나서는 인간의 신비가 올바로 밝혀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골로1, 15:고린후4, 4)이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아담의 후손들에게 최초의 범죄로 인해 이지러졌던 하느님의 모습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실 때에 당신의 천주성을 버리지 않으셨으므로 인간 본성도 그때에 하느님의 품위에까지 들어 높여지게 되었습니다(사목22참조).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
그리스도께서는 무죄한 어린양으로 스스로 제물이 되심으로써 인간에게 생명을 되찾아 주셨고,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당신과 화해시키시고 서로 일치시켰습니다(고린후5, 18-19:골로1, 20-22참조). 성자의 모습을 닮은 인간은 성령의 은총으로 육신이 속량되기까지 내적으로 완전히 쇄신됩니다. 마침내는「예수를 죽은이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하느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며 내 죽을 육신도 다시살게 하실 것입니다」(로마8, 11:사목 22참조).
생명권의 불가침성
이와같이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해 주셨기에 인간의 존엄성과 신성 불가침성은 하느님께서 보장하신 것이며 그중에서도 생명권은 가장 기본적인권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권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여타의 모든 인권도 보장될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
그러나 온 세계에서는 지금 인간의 생명권이 무시당하며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 우선 정책과 물질주의의 팽배로 인명의 존엄성이 여려가지 모양으로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에 우리 주교들은 인간생명의 고귀함을 상기시키고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살인행위를 경고함으로써 인간성 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해 주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낙태는 살인 행위입니다.
사람을 죽인 죄는 사형까지 언도할수 있도록 규정한 우리나라 형법이 낙태죄는「1년이하의 징역 또는 1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형법269조)고 하니, 국가가 낙태금 지법을 실제로 시행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쉽게 알수 있습니다. 모자 보건법이 우생학적 이유로 광범위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므로 일반 국민은 가족계획의 수단으로 죄의식 없이 낙태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연간 2백만명의 태아가 살해당한다고 합니다. 또한 낙태행위의 범람으로 한국여성들의 건강은 극도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낙태는 분명한 살인행위요,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인명 경시 풍조의 근원이라고 봅니다.
자살도 살인죄입니다.
현대사회의 갈등 속에서 불안과 초조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실망하는 청소년들과 사회발전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극심한 가난을 이기지 못한 성인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끓어버립니다. 때로는 자기 주장을 관철하지 못할때 의식적으로 자살을 계획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자살 행위는 그 명분이 어떠하든 분명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주권을 모독하는 죄악입니다.
안락사도 하느님의 주권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이왕 죽을 사람이라면 고통중에 살게 하는 것보다 고통없이 죽여주는 것이 낫다는 현대인들의 사고방식도 하느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행위는 아름다운 덕행이지만 고통의 지속을 없애주기 위하여 직접 생명을 끊는 행위는 정당화 될수 없습니다. 생명의 주권자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체의 고의적 상해도 죄악입니다.
남의 신체를 상해하는 일이 죄악인 것처럼 자신의 신체를 상해하는 것도 죄악입니다. 구타와 고문이 죄악인것 같이 스스로 불임수술을 받거나 병역기피의 목적으로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행위들도 죄악이며 이를 시술한 의료인도 마찬가지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밖에도 현대문명의 발달로 온갖 편리하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생산수단과 교통수단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공장의 공해 배출, 교총사고를 예견할수 있는 음주운전과 난폭한 과속운전도 실정법에 위배되기에 앞서 이미 양심법상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경제 제일주의가 인명경시풍조를 조장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인명 경시 풍조의 원인은 바로 인간보다 물질을, 생명보다 재물을 중시하는 유물론적 인생관에서부터 비롯 되었습니다. 인구조절, 가족계획 자체가 이미 생명보다 음식을 앞세운 발상이었습니다. 이미 태어난 사람이 더 잘 살기 위해서 더 낳지 말자는 발상이었습니다. 낳지 않는 방법 채택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절제를 요구하는 자연 주기법보다는 도구와 약물의 사용, 불임수술 등 자연을 거스르는 편리한 방법을 사용하다가 마침내는 낙태라는 살인 행위까지 인구조절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정부의 새로운 각성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나라의 지도자들이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범죄와의 전쟁, 새 질서 새 생활 환경보전 등의 운동을 실효있게 전개하려면 정부와 국민이 다같이 인명의 존엄성을 확신하고 잉태되는 첫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정부는 이미 인구 감소를 개탄하는 선진국들의 현실을 보아서라도 무모한 가족계획 사업을 즉각 중지하고, 낙태금지법을 새로이 강화해서 성실히 시행해야 할것입니다.
정부가 가족계획 사업으로 낙태를 무제한 묵인 함으로써 인명 경시 풍조 조성에 앞장선 결과가 되었기때문입니다. 국가의 존재목적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니, 재산보다 생명이 먼저 보호 받아햐 하며 약한 생명일수록 더욱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정상인보다는 신체장애인이 먼저 보호 받아야 하고 장애인보다 더욱 약한 태아는 가장 우선적으로 적극적인 보호를 받아야 할것입니다. 경제발전을 구실로 그동안 공공연하게 묵인 내지 장려하던 낙태도 이제는 제도적인 차원에서 금지해야만 인명 경시 풍조를 시정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회복할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선의의 국민들에게
정부가 앞장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다면 우리에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인명 경시풍조를 바로 잡고 인명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선의의 모든 국민들이 함께 나서야 할 때입니다. 경제발전이 좀 늦추어지더라도, 경제적 이득이 좀 감소되더라고 인명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행위를 자제할 줄 아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농민은 인명에 해로운 농약 사용을 자제하여 무공해 농산물 생산에 힘쓰고, 기업인은 공해배출을 삼가며 위험한 작업환경을 개선하여 근로자들과 국민의 생명을 적극 보호해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는, 필요하다면 자연 주기법으로 임신을 조절하여 인공적인 피임 방법을 피하도록 하며 특히 이미 잉태된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고 새로 태어나는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여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모든 신자들에게
친해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인명 경시 풍조가 만연된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가 먼저 회개 합시다. 또한 우리 자신과 우리 민족의 범한 죄를 속죄하는 동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께 빛과 용기를 간구합시다. 이렇게 회개와 속죄와 기도로 새로이 무장하고 모든 선의의 이웃들과 함께 인명 존중의 새문화를 창조해 나갑시다. 이에 앞장서는 개인과 가정에 우리 주교들은 뜻을 합하여 주님의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1991년 12월 8일
인권주일에 한국천주교주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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