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대목에서 요한 9장에 대한 전반적인 해설을 하였고 거기서 지적했듯이 실로암의 소경을 눈뜨게 한 기적은 예수께서 「세상의 빛이다」라는 구원의 진리를 나타내는 6번째 표징이다.
본문을 하나씩 짚어 보자. 「길을 가시다가」(마르1, 16:2, 14:마태9, 27:20, 30)라고 했지만 예루살렘을 떠난 것은 아니고 장막절을 마치고 성전을 떠난 것을 가리킨다. 「날때부터의 소경」은 셈족의 표현으로는「어미 뱃속부터 소경」인데 우리말로는 배내소경이라고 할수 있다.
이 말은 예수께서 그에게 시력을 주고 빛을 보게 하는데 그 소경이 잃었던 시력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본적이 없는 빛을 보게 된다는 말을 하려는 예비적 단어이다. 배내소경은 여기서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을 맛보지 못한 이교도들을 상징할수 있다. 『누구의 죄냐』고 제자들이 질문하였는데 여기서 제자들이란 12제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라삐들의 교육을 받았지만 예수를 따르는 유대아인들을 가리킨다(요한7, 3). 욥서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라삐들은 사람의 병과 죄를 직접 연결시키고 있었다. 어른이 신체적불행을 당하는 것을 자기 죄의 결과라고 가르치는 것은 물론 갓난아기도 모태에서 죄를 짓거나 부모의 죄가 아기에게까지 그 결과가 미친다고 가르쳤다(출애20, 5:신명5, 9).
개인적인 죄와 그가 받은 병고의 인과관계는 예수 당시에도 일반화된 생각이었지만(루가13, 2) 예수께서는 여기서 그런 생각을 고쳐주려고 하신다. 욥서는 병고가 죄의 벌이라는 전통사상을 물리치고 하느님께 호소하는 것으로 그치지만 예수께서도 병의 원인을 밝히지 않고 병고라는 불행에서 헤쳐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 주신다.
사람이 병고에서 해방되는 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표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후대의 교회신학은 개인의 죄와 개인의 병고라는 인과관계가 아니고 인류전체의 죄(사탄의 세력)와 인류의 병고를 인과관계로 하는 원죄와 그 결과라는 인과관계를 신학적 주제로 삼았다. 그러니 한 개인의 병고는 누구의 죄랄것이 없이 인류전체가 짊어지는 죄의 결과이다.
여기서 인류구원의 빛이 필요하고 그빛은 하느님의 권능으로 주어진다. 저 배내소경을 눈뜨게 하고 빛을 보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놀라운 일이 드러나는 것이다. 라삐들이 주장하는 대로 이 배내소경이 죄때문이라 해도 그에게 시력을 돌려주고 빛을 보게해 줌으로써 죄의 세력에 대한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 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그 분의 일을 해야 한다」. 그분의 일은 3절의 하느님의 길, 즉 죄인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는 일이다. 여기서「나는…일을 해야 한다」라고 했어야 할 자리이지만 예수께서는 구원의 사업을 언급할때 당신과 제자들을 함께 합쳐서「우리」라고 한적이 많다(요한12, 35~36:마르4, 30).
요한이 이 복음서를 쓸때 모든 교우들이 이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낮은 일하는 때임은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서 낮은 살아있는 동안을 가리키며 예수께서 활동하는 기간을 가리킨다. 그것은 구원의 역사속에서는 예수의 말씀이 살아있는 때를 가리킨다.
이러한 매락에서「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씀을 실감있게 알아들을수가 있다. 그러므로 낮은 예수자신이며 밤 즉 암흑과 대조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5, 14)라고 말씀하실때 빛이신 예수의 구원사업역할이 제자들에게 넘어졌고 이 사상은 만민의 빛으로 예언되었던「고통받는종」의 사상이(이사49, 6) 반영되어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기적은 간단한 절차로 끝난다.
침을 뱉아 흙을 소경의 눈에 바르고 연못에서 물로 씻게 한다. 이 절차는 요한이 이 복음서를 쓰던 사도교회의 세례예식절차를 말하고 있다. 침을 바르는 것은(마르7, 33:8, 23) 고대 이교도 사회에서 의학적인 효능이 있는 것으로 사용되었고 라삐들은 이것을 마술이라 하여 금지하였다. 초대 그리스도교는 이교도들사이에 들어가면서 그들의 관용을 세례예절에 도입하였고 예수께서 이 절차를 행사신 것은 어두움에 싸인 이도교들에게 빛을주는 상징으로 볼수 있다.
흙을 바른 것을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이 사람을 만들때 흙으로 빚은 것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물로 씻도록 한것은 구약성서에서 엘리사가 나아만을 고칠때 요르단강 물에 가서 씻게 한것을(열왕 하5, 10~13) 반영한다. 물론 병을 깨끗히 씻는 상징적 행위이고 이 절차는 교회에 입교하는 사람들에게 죄를 씻는 성사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실로암은「파견된 자」란 뜻이라고 복음서에 명기하였듯이 세상에 빛을 주도록 「보내진 자」즉 예수 그리스도자신을 가리키며 비로 위에서 말했듯이『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해야 한다』라는 말을 사실적으로 나타낸다. 예수 자신이 보냄을 받아 생명수가 되고 눈먼이에게 빛을 주건만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이 백성은 잔잔히 흐르는 실로암 냇물을 외면하였다』(이사8, 6). 이 변어로 예수의 기적과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론을 제기하였다.
우선 소경이었던 사람의 신원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것은 세례로 새로나게 된 사람이 아주 다른 사람으로 나게 된다는 세례교리를 암시한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요』라고 확인시켜주는 말은 예수께서「하느님의 아들」임을 확인시킬때 쓰는 말로 요한은 사용하고 있다(요한4, 26). 여기서는 세례받은 사람「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소경이었던 사람의 예수께 대한 인식은 점차적으로 진전된다. 우선은 단순히「예수라고 불리는 분」으로 격의없이 속마음을 터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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