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을 누른 후에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마도 잠을 자고 있었던지 아니면 옷을 갈아 입느라고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려니 생각했습니다.
내가 불쑥 찾아가면 까무러치게 반가와 할줄 알았는데 아찌나 당황해 하고 난감해 하던지…. 혹시 다른 손님이 계신가 하고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어색하게 응접실로 안내되어 들어가면서『미리 연락하지 않고 와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그녀는 탁자위에 커피 한잔 올려주고는 내게 잠깐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한참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서운하고 화도 났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다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하, 그랬었구나! 남편은 출근했고 아이들은 다 학교에 가고 없는데 아무리 신부지만 남자가 부인 혼자있는 아파트를 방문하다니 경비원 아저씨 보기도 그렇겠고 혹시 이웃 아낙네들의 시선도 의식해야되고 그래서 그랬었구나!
그래도 그렇지, 그럼 그렇다고 말로하면 될것이지 사람을 여기 이렇게 앉혀 놓고 나와보지도 않다니 이건 사람을 무시하는 처사일뿐 아니라 아마도「빨리 돌아가라는 신호인가보다」생각하며 「그래, 빨리 돌아가자, 그래야 이집도 다른 사람들의 쓸데없는 오해도 피하고 나도 오랫만에 서울와서 찾아볼 곳도 많은데 이렇게 바쁜 내가 어디 갈데가 없어서 여기에 왔나? 그리고 다시 여기 오나봐라, 평소에 가끔 만날때마다 나더러 서울에는 자주 올라오는 모양인데 왜 자기집만 한번도 들리지 않느냐고 불평비슷하게 말하던것도 다 빈말이었구나!」생각하니 배신감 같은것도 느껴졌습니다. 「이제 당신네 말은 안 믿어, 찹쌀떡은 찹쌀로 만든대도 믿지 않을테니…」커피 맛이 유난히 쓰게 느껴졌습니다.
방문이 열리고 갑자기 화안하게 웃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오시면 오신다고 미리 말씀하셔야 이쁘게하고 기다리지요. 이렇게 갑자기 오니까 집안 청소도 안돼있고 화장도 못했는데, 이런 실례가 어디 있어요? 바쁘게 하느라고 화장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그제사 나는 왜 그가 그렇게 당황하고 난감해 했는지 그리고 나를 여기에 오랫동안 혼자 앉혀 두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아직 집안 아침 청소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내게 화장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청소되어 있지 않은 집안과 정리되지 않는 살림살이 때문에 나한테 칠칠맞은 여자로 보일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한테 보이기 위하여 그랬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흐뭇하고 나이를 먹어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소녀같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기까지 했지만 또 한편으로 내 심기가 불편했던 점도 있도 해서 약간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날짜를 정해 놓고 해마다 12월 25일에 오시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대림시기동안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는가 봅니다.
신자들은 오시는 그분을 환영하려 몸과 마음을 청소하고 정리정돈하며 그 분에게 잘 보이고 좋은 평가를 받으려 합니다. 적어도 사람인 내게 잘보이려는 것 보다는 훨씬 더 신경을 써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오시는 분이 편히 오실수 있도록 그분이 오실 길을 미리 다듬도록 하십시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굽은 길을 바르게 만들라. 골짜기는 모두 메우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추어라. 굽은 데는 바르게 하고 험한 데는 평탄한 길이 되게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가3, 4~6).
방문 날짜를 미리 정해 놓고 또 준비할 기간도 길게잡혀 있으니 준비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성탄절을 맞이 하게되면 더 이살 변명할 여지도 없을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우리 자신안에 오실 그분을 위하여 준비합시다. 그리고 자주 그분을 모실 준비를 점검해야겠습니다. 나아가 문밖오시는 길까지 환영할 채비를 차려야겠습니다.
대림 둘째 주간에는, 집안을 청소할 때마다 가재도구를 정돈할 때마다 하다못해 옷가지 하나를 집어걸고 책상의 책을 책꽂이에 꽂을 때에, 화장을 하거나 비단 머리를 빗고 손질할때에는 꼭 우리 마음도 함께 손질하고 다듬어야 함을 기억합시다.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곧 그분이 오실 길을 「평탄한 길이 되게 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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