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가 태어난 곳은 공주에서 30리뜸 떨어진 의당면 소재지이다.
그의 부친은 이북에 부인과 1남3녀를 남겨두고 홀로 자유대한에 월남했고, 직업을 구하던중 이북에서부터 장사수단이 좋았던 그는 호남 일대를 무대삼아 쌀장사를 시작한것이 마침내 큰 부자가 되기에까지 성공했다.
그의 부친이 재혼할 당시 인수는 모친 태중에 있었고, 이복 누이와 세식구가 새 살림을 차린지 불과 4개월만인 그해 3월에 한많은 이땅에서 그는 첫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복 누이 등에 업혀 자라났고 모친은 가사일에, 그리고 부친은 하던 쌀 장사를 그만두어도 될만큼 큰 부자가 되었다.
인수의 부친은 세상살이가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공화당에 입당하여 국회의원에 출마하였다. 그동안 피땀흘려 쌀장사로 모은 거금과 어마어마하게 큰 집채까지 모두를 선거 당선을 위한 선물 공세로 눈깜짝할 사이에 다 날리고도 그만 낙선되어 하루 아침에 알몸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에 품행이 좋지않았던 모친은 어린 남매도 아랑 곳 없이 떼어놓고 가출한후 영원히 소식이 없었다.
젖먹이 인수는 동네부인들의 동냥젖을 억어 먹으며 근근히 양육되고 이복누이가 그를 키웠으니 오죽하였으랴. 어린 생명에게 젖보다도 따뜻한 사랑과 엄마의 품이 대단히 중요했다. 엄마 없는 인수에겐 평생 지울수없는 크나큰 상처가 아닐수 없다.
그가 중학교 1학년때 지금까지 엄마의 대역을 해오던 누나마저 출가했다. 한달후에 딸 둘을 가진 새 엄마가 들어오셨다.
얼굴에는 참바람이 씽씽 불만큼 차가운 부인이었다. 매일 식사때 외에는 식구들 서로가 얼굴을 마주 대하는 일이 없었을만큼 무관심한 상태였다. 아니 인수쪽에서 슬슬 피해다녔다는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아버지도 그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라 재촉했지만 입밖으로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생활이 몇달 자나자 자연 그들을 대하기가 두려워져서 그는 여러가지 궁리 끝에 드디어 책상 뒤에 부친이 넣어둔 돈 9백원을 가지고 가출하고 말았다. 그때그의 나이 14세였다.
천안ㆍ유구 등지를 돌면서 돈을 쓰다 보니 이틀도 못가서 돈이 바닥이 났다. 그는 이제 거리를 방황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마침내 저녁이 되어 터널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오더니 자기와 같이 다니면 돈을 벌수 있다고 하여 따라나선 것이 아이스케끼 행상이었다.
세끼 밥먹여주고 하루 5백원을 벌수 있었다. 그 아이 나이는 세살 위이고 상냥하고 자상하여 한때 참 좋았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얼음과자 장사가 잘되지 않자 그는 인수에게 귀가 하기를 권하고 상경하는 바람에 퍽이나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되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