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세계의 그리스도교화
이 시기, 즉 4, 5세기에 지하교회에서 나온 그리스도교는 아무런 장애없이 자유롭게 국가의 특별한 보호까지 받아가며 마음껏 포교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개종이 제국의 전 지역에서 증가했을 뿐더러 제국밖으로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으며, 또 일반대중과 그때까지 반항했던 계층에까지 미쳤다. 도처에서 교구가 증가하고 시골본당까지 생겼다. 로마세계 전체가 그리스도교화되어 가고 있다.
대도시들은 동방이나 서방을 막론하고 거의 복음화되어 있었으나 지방이나 농촌들은 아직 낙후단계에 있었다. 이제 복음은 그러한 시골 농촌에까지 깊숙히 침투되었다. 이를 위해 주로 수도자(수도회의 기원에 관해서는 다음에 따로 언급한다) 선교사들이 맹활약을 했다. 그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 갈리아의 마르티노, 애란의 사도인 파트리치오 성인이다. 투르의 주교 성 마르티노(+397)는 나귀를 타고 다니며 이교도들과 대항하여 그들의 우상을 부수는 동시에 설교와 기적으로 주민들을 개종시킨, 이 시기의 전형적인 유랑 선교사였다.
385년경 로마령 브라타니아에서 태어난 파트리치오(패트리크)는 16세때 해적에게 잡혀 애란으로 끌려가 6년간 포로생활을 했었다. 그후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수도원을 두루 찾아다니며 공부를 하고는 마침내 432년 그의 소원대로 애란의 선교사로 애란의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수도자들을 동반하고 애란에 도착, 30년간의 활동 끝에 거의 전 주민을 개종시켰다.
그리스도교는 이 시기에 제국의 국경을 넘어 멀리 시리아, 아르메니아, 알바니아, 이디오피아 등에 까지 전파되었다.
이와같이 지하교회로부터의 해방은 교회에 신속하고도 광범한 복음전파란 이점을 안겨주었으나 그로 인한 교회 안의 위험 또한 적지 않았다. 특히 교회의 대중화 내지는 평범화가 큰 문제였다. 보다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러나 신앙의 개념조차 모르는 속빈 신자가 늘어만 갔다. 묵은 삶을 청산하려 하지 않는 그들에게 세례 성수와 피상적인 의식이 복음정신까지 침투시킬 수는 없었다.
교리ㆍ신학논쟁
이 시기에 큰 이단과 이교(離敎)들이 발생하여 3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이것은 교회의 평범화보다 훨씬 더 큰 위협이었다. 왜냐하면 교회안에 심한 분열을 일으켜 교회의 일치를 크게 위협했기 때문이다.
이 이단들은 크게 세가지로 구별된다. 하나는 삼위일체론과 관련된 것으로 즉 성부와 성자와 성신과의 관계를 잘못 구명한 데서 나온 이단이다. 둘째는 그리스도론과 관련된 것으로 즉 신인(神人)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잘못 결합시킨데서 온 이단이고, 셋째는 인간의 구원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즉 인간의 자유와 은총의 관계를 잘못 설명한데서 나온 이단이다.
그런데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에 관한 이단은 동방 그리스세계에서, 그리고 구원에 관한 이단은 서방라틴 세계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동방에서는 신학적인 문제에 전념한 반면에 서방에서는 인간의 구원과 직결되는 실제적인 문제에 전념했음을 의미한다.
먼저 삼위일체론 중에서 성자 그리스도를 성부의 피조물로 보는 이단이 생겼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란 사제가 처음으로 주장을 했기 때문에 아리아니즘(아리우스주의)으로 불리게 되었다. 313년부터 유창한 설교와 저술 등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고있던 그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관한 신앙문제를 해결하고자 신(神)은 하나밖에 있을수 없다는 전제 아래 성자가 성부와 본질적으로 같을 수(同質) 없고 따라서 시작이 있었고 영원하지도 않다고 하며 성부에게 종속시켰다. 물론 성자를 최고의 피조물로 어느 정도의 신성(神性)을 인정했으나 그것은 2차적인 불완전한 신성에 불과 했다. 다음 아리아니즘을 발전시켜 성신도 피조물로 보고 그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이 나왔다.
다음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에 관한 이단으로 네스토리아니즘, 단성론(單性論), 단의론(單意論) 등 셋이 있다. 네스토리아니즘을 주장한 네스토리우스는 428년이래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있을때 그리스도의 인성을 중시한 나머지 신성이 인간 예수 안에서 마치 성전(聖殿)처럼 거처했다고 주장하며 인성을 신성에서 완전히 분리시켰다. 결과적으로 마리아는 인간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지 천주의 모친은 될 수 없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런데 같은 무렵 콘스탄티노플의 한 수도원의 대장에었던 에우티케스는 네스토리우스와 정반대의 그릇된 주장을 하게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어 하나의 성, 즉 신성만이 남았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른바 단성론(모노피지티즘)이란 오류에 빠졌다. 네스토리우스가 두 성을 크게 구별함으로써 신인적(神人的) 결합을 파괴시켰다면 에우티케스는 신적(神的) 결합을 강조함으로써 인성을 포기한 결과가 되었다.
논쟁은 계속되어 2세기후 세르지우스는 이상의 두가지 주장을 화해시키고자 두 성의 결합 대신에 두 의지의 결합에서 하나의 의지 즉, 신적 의지만이 남았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의론(모노텔레티즘)이라는 것이다.
서방에서는 은총에 관해서 펠라지아니즘이란 이단, 그리고 교회와 성사에 관해 도나티즘이란 이교가 나왔는데 4세기 초에 도나투스(실제로 그의 주장인지는 확실치 않다)는 성사의 유효성은 오로지 성사 집전자의 성성(聖性)에 달려 있다는 주장을 했고, 4백년경 영국인 수도자 펠라지우스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고 원죄도 결정적인 상청를 입힌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이러한 이단들 때문에 처음으로 공의회들이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단과 공의회 문제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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