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잠을 설쳤다고 하면서 내게 할말이 있다고 아침 일찍 찾아온 분이 있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는것 같았습니다. 순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실수를 했는지 또는 내게 대한 무슨 오해가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지만 일단 들어오라고 하면서 표정을 훔쳐보니까 비록 부시시한 얼굴이지만 그렇게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너무 일찍 찾아와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차렸지만 나는 무슨 내용을 가지고 왔는지에 대해서 궁금하고 긴장하여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계속 본론은 제쳐 놓고 간밤에 잠을 제대로 못잤다는등 새벽에 일찍 깨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를 만나러 오게 됐다는둥 보니까 내 얘기는 아니고 아마도 자기 얘길꺼라는 짐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도 약간의 안도와 맘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아직도 서론은 계속됩니다.
누구에서도 말할수 없고 마누라한테도 말을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고민스럽고, 자기는 누구에게라도 말을 하기전에는 잠도 못 잘뿐 아니라 아무일도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해하는 심정으로 고해 비밀처럼 비밀은 보장될테니까 모처럼 새벽미사도 할겸 날 찾아왔답니다.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어제 저녁 퇴근시간에 인사과장을 만났는데, 이번에 자기가 부장으로 승진 내정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자기는 만년과장이라 승진을 포기한 상태이며 주변에서도 모두 그렇게 믿고 있는 판국에 자신도 인사과장이 농담한다고 생각하고 비웃지 말라고 화를 냈답니다. 그랬더니 사실이라면서 한잔하면서 얘기하자고 했답니다.
얘기를 듣고보니 사실이라 기분도 좋고 해서 3차까지 마시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에 아내에게도 말을 못했답니다. 집요한 아내의 추궁도 일단 피하긴 했는데 보류한 상태이고, 또 소문이 나면 내정된 것이 취소 될지도 모른다는 인사과장의 위협때문에 시달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제는 그렇게하고 잠을 청하는데 아서 도저히 잠이 들지 않더랍니다. 승진후에 자신에게 생길 여러가지 신나는 변화를 생각하고 발표될 때 주변 사람들의 놀라는 표정들도 상상하고 그러느라고 잠을 설치고 새벽에 깨서 미사에 왔노라고 했습니다.
부인은 그가 나를 만나는 줄은 모르고 그냥 아침미사만 하고 오는 줄로 알고 있답니다. 아무도 남들은 그 나이에 부장된다는 것이 부끄러울지 모르지만 자기는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머지않아 회사를 떠나야 하지 않을까 불안해 하고 있었으며 내일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는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지내왔답니다. 남들은 뭐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이 심정을 누구에게라도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릴것 같아서 지금 내게 말하고 있답니다. 이제는 자기도 아내나 가족들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는 별 것 아니었고 오히려 내가 긴장했던 생각하면 싱겁기까지 했지만 그런 내색은 할수없고 참 기쁘시겠다고 하고는 그 기쁨을 드러내지 못해서 참 답답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퇴근 후에 내가 모른척하고 술 한병 들고 집에 갈테니 저녁이나 같이하면서 자연스럽게 부인에게는 알리는 게 좋겠다고했습니다.
그분을 보내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좋으면 그럴까? 그리고 이 비밀스런 기쁨을 간직한 동안에는 어떤 어려움이나 아픔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잿빛 생활 속에서도 장미빛 꿈을 간직 한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기다림의 시기인 대림절은 결코 즐거운 시기는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고 절제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 잿빛시기에도 우리는 간직한 장미빛 꿈과 희망이 있기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의 색깔은 장미색 입니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의 기쁨은 바보스럽고 비웃음의 대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사도 바오로의 말씀으로 위로를 삼고 기쁘게 살아갈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필립 4,4~7).
내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 중에 있을때 나는 오늘 복음의 요한세자 말씀처럼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불의한 짓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속옷 두벌을 가진 사람은 한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같이 남과 나누어」먹을만큼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리하게 재산을 모으고 자기만을 위하여 과소비하며 순간의 쾌락을 위하여 물염치한 사람들은 지금 불안한 마음을 잊기위한 발버둥임을 우리는 압니다.
신앙으로 간직한 남모르는 해방의 기쁨이 있기에 우리의 마음은 한결 느긋할 뿐아니라 바보스런 그러냐 기쁘게 하루를 살아갑니다. 미구에 경험할 신나는 변화의 감추인 꿈을 간직하고서 잿빛 생활 속에서도 장미빛 기쁨을 향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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