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옥이가 집에서 식구들과 대화를 기피한다는 사실이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다. 특히 아버지하고는 마주앉는 것 조차도 싫어하고 끼니때도 아버지와 한자리에서 밥 먹는 일이 싫어서 굶기가 예사라는 것이다.
제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꽝 닫고 안으로 잠그면 식구들은「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선생님, 부끄러운 말입니다만 수옥이 아빠는 요즘 딸의 눈치를 슬슬 살핀답니다. 주일 같은 날엔 먼저 식사를 끝내고 TV 앞에서 열심히 보는 척(?)해요. 어떤 땐 마당을 서성이죠. 참 기막힌 일이죠』
수옥이는 웃는 소리가 유난한 아이다. 때그르르 구르는 듯한 웃음소리만 들어도 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수다스럽지 않지만 긍정적인 사고력을 가진 쾌활한 성격이다. 연년생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생각해보니 집 식구들 얘기는 별로 하지 않는 아이다. 동생에 관한 얘기도 한 적이 없다.
문득 상담했던 한 소녀의 일이 생각났다. 혹 도움이 될까해서 수옥이 어머니께 말해 주었다.
그때 그 소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개학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커질대로 커진 소녀였다. 그 소녀는 상담실에서 자기 심중을 털어 놓는 태도만은 아주 참했다. 그리고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정을 많이 주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웃는데 이빨새에 고추가루가 끼어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는데 그 후부터 변화가 왔다는 것이다.
현관에서 퇴근해서 들어오는 아버지의 말소리, 발소리가 들리면 온몸에 소름이 끼쳐서 솜으로 귀를 틀어막곤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이해가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후 나는 그 소녀를 우리 상담실의 의료상담위원인 정신과 의사와 연결을 짓는 후속조처를 했다. 그랬더니 그 소녀의 어머니가 상담실로 찾아 와서 놀라움과 실망을 하소연 했다.
어머니와 만나보니 그 소녀가 말한 대로 심한 갈등에서 몹시 앓고 있었던 게 사실로 드러났다. 일단 어머니(보호자)에게 진단과 치료에 관한 걸 인계하면서 그 상담은 끝을 냈었다.
수옥이 어머니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하고서, 혹시 한 반 년 떨어져 산 게 원인이 아닐까 했다. 고향에서 이사를 오는 과정에서 수옥이가 먼저 상경해서 학교를 다녔다(중1학년).
그 후 6개월간 기숙했던 이모네 말을 할 때면 이모부가 멋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럴 때 아버지와 비교를 해서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기도했다. 한마디로 이모부를 학(鶴)과 같은 존재로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밥 먹을 때 수옥이 아버지는 소리 내서 음식을 씹는데, 흉내를 내기도 했다 한다.
수옥이 어머니는 내가 들려준 그 소녀의 사례가 자극이었던 게 틀림없다. 심해지기 전에 가족의 결속을 통해 처절할만큼 노력했는데 아버지의 협조가 대단했다.
청소년기의 결벽증(?)때문만은 아니나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너무 노출되어서는 안된다. 위엄도 잃지 않아야 하며 부모로서의 자격은 반드시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필수조건도 퇴색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자녀를 가볍게 보지 않는 노력을 부모는 해야만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