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채택이 이루어진 것은 지난 71년 8월에 남북적십자회담이 처음으로 제기된후 20년만의 쾌거이다. 「7ㆍ4남북공동성명」이후의 남북관계는 60년대까지의 「대화없는 대결시대」에서 70년대의 「대화있는 대결시대」를 지나 80년대의 「교류있는 대결시대」를 거쳐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90년대 「화해와 협력의 남북평화공존시대」를 열어나가게 된 셈이다.
물론 분단이후 반세기에 걸친 남북관계가 보여준 의외성과 폭발성 그리고 현실적 제약 등으로 인해 그동안 뿌리깊은 불신의 늪에 잠겨있던 「남북대결구조」가 한순간에 「화해와 협력구조」로 전환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가 뒤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관심의 법칙(?)에 의해 남북화해시대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야할 민족사회의 진로모색조차 그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욱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온세계가 하나같이 21세기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시대의 큰 흐름을 생각할 때 우리 민족만이 분단의 유산에 얽매여 또다시 역사의 큰 물결에서 낙오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될것이다. 사실 분단의 상처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상호간의 불신이다.
또한 그 불신은 자신을 향해서도 뿌리깊게 퍼져서 민족사회의 생명력을 잠식해왔다.
그 때문에 남북관계는 항상 미래 보다는 과거에 집착해 왔고 현재 역시 항상 불안정하여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싹을 키워오지 못하였다. 이제야말로 미래를 향한 희망의 싹을 키워「냉전」이라는 빙하시대의 청산을 기약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남북대화 20년을 결산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번 합의서 채택의 가장 큰 의의는 제5조의 내용처럼 남과 북이 현재의 정전상태를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점을 밝힌데 있다. 이로써 남북관계는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상호존중하는 가운데 당사자간의 합의를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나갈 수 있는 본질적 관계의 정립이 가능하여졌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남북관계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릴만큼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정전상태의 해소와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 해결을 가져와 평화공존의 기틀을 마련하고, 실질적인 남북교류협력시대의 개방을 앞당기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남북화해시대의 개방은 과연 남북한교회의 만남도 가능하게 할 것인가?
지난 12월 4일에 정동 성프란치스꼬회관에서 개최된 남북한종교교류에 관한 세미나에서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참석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남북관계의 구조적 한계가 종교교류에 있어서도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토로하였다. 종교야말로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는 것이지만, 종교조차도 남북간의 이념과 체제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분단현실의 특수성만이 오히려 더 두드러지게 부각된 셈이다.그렇다면 남북한의 종교교류도 남북한의 「대결구조」가 「화해와 협력구조」로의 전환이 가능할 때 비로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화해시대의 개막은 종교교류의 차원에서도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남북화해시대의 새 지평을 열어나갈수 있는 역사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또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생각해 보아야할 것같다.이러한 문제의식은 결국 우리 민족사회가 지향하는 미래사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귀착된다.따라서 민족화해시대의 개막은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데 필요한 민족적 가치의 창출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사실 통일문제에 대한 반성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형태론적 접근에만 치우쳐서 가치론적인 접근은 소홀히 하였다는 점이다.그 때문에 남과북이 막상 서로 화해하고 협력해야 한다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시켜 나가야할지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통일된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서로가 상대를 기쁨으로 맞이하여 끝까지 형제적 삶의 가치와 그 결실을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가까운 예로 모국방문 중국교포들의 딱한 사정이 한약재파동쯤으로 치부되는 우리의 현실을 볼 때 과연 남북관계의 진전이 진정겨레의 하나됨을 이끌어 낼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이와 같은 상황은 모두 잠정적으로나마 서로가 다른줄 알면서도 함께 사는 지혜라든가 공동의 미래를 일구어 나가는 가치의 나눔이 부족한 우리 민족사회의 현실과 그 미래를 깊이 생각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남북한사회의 통합이 분단으로부터 분열로 귀착되는 것을 방지하는 유일한 열쇠는 공동의 미래를 향유할수 있는 가치에 의 합의와 이를 실현시켜 나가는 민족적 의지의 결집에서 찾아질 것이다.
이점에서 우리 교회도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미 사목지침서의 내용속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형제적 나눔의 실현』이 북한선교 내지는 통일사목의 중심개념으로 자리잡혀 있고,본당사목의 차원에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토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틀은 마련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신자들이 북한동포들과 그 안의 신자들을 진정 한 마음 한몸으로 받아들이고 일상의 신앙생활속에서 이들과의 참된 일치를 실현시켜 나갈수 있어야 한다는점이다.
이제 남북관계는 체제경쟁과 같은 정책대결의 차원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의 차원으로 확고히 전환되어야만 한다. 설령 이 같은 합의를 이끌어낸 남북한의 정치상황이 새로운 변화에 봉착한다 하더라도 결코 남북관계의 퇴행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21세기의 새지평을 열어나가야할 민족사회의 미래가 또다시 인위적인 정치상황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누구에 의해서도 용납될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의 구세주를 맞이하는 이 성탄절에 우리 민족에 참평화를 주시도록 간구하는 기도의 노래소리가 더욱 절실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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