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게 된 배내소경의 부모가 아들의 눈뜨게 된 경위를 밝히지 않고 직접 본인에게 미룬 것은 그 기적을 승인하는 결과가 되고 그것은 곧 예수의 예언자 자격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현명한 부모는 자신이 직접 그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바리사이파인들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으려는 판단에서 였다.그래서 그 아이가 자기 아들이라는 것과 그 아이가 분명 날때부터 소경이었다는 것만 확인하는데 그쳤다. 요한복음서가 밝히듯이 평민들은 지도층 유대아인들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든지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은 회당에서 파문을 당하도록 되어있었다. 이 분위기는 사도시대에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신생 그리스도교도들은 기존 유대아교회당에서 쫓겨났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유대아회당에서의 그리스도교도 추방은 기원 90년경에 극을 이루었다. 그리고 회당에서 추방된다는 것은 민족공동체에서 쫓겨 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약간 곤경에 빠진 셈이다.그래서 또 다시 그 소경이었던 사람을 붙들고 제2의 심문을 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이번에는 성서적 서약을 하라고 강요한다. 공동번역에서는「사실대로 말하시오」라고 의역했지만 원문대로는「하느님께 영광을 돌려라」이다. 이 말은 구약성서에서 증언할 때 또는 자기죄를 인정할 때 사용하는 선서형식이다. 여호수아가 예리고성을 점령할 때에 아간이라는 사람이 전리품을 훔친 것을 자백시키면서 이 선서형식을 취하였다. 「야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찬양하라. 무엇이든 숨김없이 자백하여라」(여호7장19). 이 형식은 유대아인들의 성서외적 문서에 그대로 인용되어 있다. 에스드라1서9장8 ; 에스드라2서10장11 ; 산헤드린서6장2) 바리사이파인들이 강요하는 진실이란 자기들의 생각을 시인하라는 것이었다. 그 생각은 물론 예수가 죄인이라는 것이다. 이 생각에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들은「우리가 알고 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그들은 자기 말에 무게를 주기 위하여「우리」라는 말을 덧붙인다. 바리사이파 사람중 한 사람인 니꼬데모가 예수를 찾아와서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것을 고백할 때에도「우리는」이라는 말로 시작하였다(요한 3장2). 예수의 실상에 직면한 편견없는 사람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즉 예수가 분명 안식일법을 범하였다는 사실과 그 분이 분명 소경을 눈뜨게 하였다는 사실을 놓고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에 빠진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면 죄인같고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면 죄인같지 않고」(요한9장16). 고쳐진 소경은 심문관 들과 율법논쟁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누가 뭐라해도 자기 자신이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것은 사실이고 예수라는 분이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지금은 환히 보고 있다는 사실만이 자기가 자신있게 말 할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단호하게 실토하였다.그의 대답중에서「내가 아는 것은 … 」이라고 한 것은 바리사이파사람들의 「우리가 알기로는 … 」이라고 한 것과 대조되어 사적인 말이지만 그것은 사실이고 권위자들의 말이라고 사실과는 위배된다는 것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제 율법 준수와 율법에 어긋나는 진실과의 사이에서 해결책은 명백해 졌다. 율법을 폐기하는 일이다.이 해결책은 율법은 사람을 죽음으로 단죄하는 것이며 예수께 대한 믿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하고 살게 한다는 사상을 요한복음서에서 일깨워준다.
그리고 이 사상은 이미 사도 바오로가 개척한 바 있다(갈라3장). 율법에 눈이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기들 이론의 줄거리를 잃었다. 그리고 마치 어린 아이상대자와 옥신각신 말싸움을 하고 있다. 예수께 대한 믿음이 한층 깊어진 소경이었던 소년은 실감한 대로 그들의 물음에 대답한다. 치유과정을 또 묻는 그들에게 소년은 비웃기나 하듯이 왜 자꾸 같은 질문을 하느냐고 몰아붙이고「당신들도 그 분의 제자가 되려고 하느냐」고 되물었다.그러나 이것은 비웃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실상을 본대로 들은대로만 믿어도 그 분의 제자가 안될수가 없는데 불신하는 그들이야 말로 눈뜬 소경이라는 뜻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가끔 자기들을「모세의 제자」라고 부른다. 유대아인들에게 모세가 가지는 권위는 거의 신적인 것이었다(요한 5장45참조). 모세는 하느님과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 한 분이기 때문이다(출애 33장11:민수12장2~9).
그런데 예수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지 않는가.이 대목은 모세와 예수그리스도를 대조하는 요한신학의 일면이기도 하지만(요한 1장17) 바리사이파 사람들은「나는 하느님 아버지가 보내서 왔다」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어린아이 앞에서 부인하려는 것이며 그뿐 아니라 예수의 출생에 대한 경멸을 표시하는 의도이기도 하다. 이런 논쟁을 벌이면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소경어린이에게 심문하다가 그 소년의 논법에 말려들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 바리사이파인들은 이성을 잃어가고 있고 소경소년은 이치가 살아나고 있다. 하느님이 버리시는 자들은 죄인이라는 것은 성서에도 있지만(이사 1장15 ; 잠언15장29 등)이치있는 원칙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사람의 청은 들어 주신다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그런데 유대아지도자들은 분명히 소경을 고쳐주신 분을 어디서 온지 모른다고 하니 당신들이 제정신이요 라고 그 소년은 추궁했다. 불신자들은 그 소년에게「죄를 뒤집어 쓰고 난주제에」라는 욕설로 대꾸하였고 그를 쫓아 버림으로써 일과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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