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시 시장 주변을 배회하던 어느날, 경상도 사나이 한사람을 알게 되었다. 낮에는 극장 주변에서, 아니면 여인숙 등지에서 생활했다. 저녁에는 빈 상회를 무대로 귤 사과 배 감 등을 대량 절취하여 어느 아주머니에게 한 상자에 3천원에서 5천원까지 싸게 넘기는 것이었다. 인수는 하루 저녁만 고생하면 하루10만원 정도 거금을 쉽게 벌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와 함께 합세를 했고, 그와 같은 생활 패턴을 이어 받아 안일한 생활을 얼마동안 잘해왔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옛 속담과 같이 그런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72년 12월 서대문 경찰서에 구속되어 소년원에 송치 되었고 4개월만에 출소 하였으나 그가 찾아가야할 곳과 몸둘곳 기다려주는 곳도 없이 막막 하기만 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4개월동안 소년원에서 겪었던 온갖 고통은 출소하는 순간부터 새까맣게 잊었다는 사실이다. 하는 수없이 그는 직업 안내소를 찾아가 얻은 직업이 월 3천원에 중국요리 배달원이 었다.
취직이 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에 마음의 여유는 있었으나 역시 밤만되면 공허하게 엄습해오는 어둠은 걷잡을 수 없게 그를 괴롭혔다.
우선 억센 사내들의 냄새가 싫었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국사람들의 대화장면이 항상 마음에 걸렸고 몹시 불쾌했다. 보수가 월3천원, 죽도록 일해도 하루 3ㆍ4천원씩 벌던 걸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고 따분한 노릇이었다.
그는 몇 개월만에 그 집을 뛰쳐 나왔지만 막상 갈곳은 없었다. 집이 있어도 계모의 따갑고도 싸늘한 눈초리가 죽기보다 싫었고 당시 실업자인 아버지의 심정도 헤어려야 했다. 하는수 없이 또 소개소를 찾아가 안내를 받은곳이 수원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목장이었다.
힘은 힘대로 들고, 보수도 적지만 무엇보다 목장에서 나는 악취는 며칠전에 먹은 음식물 조차 토해낼 정도로 메스꺼웠다. 그곳을 그만 두고 식당, 목욕탕 등을 전전하면서 1년정도 방탕하다보니 그에게 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74년 4월 다시 찾은 용산 청과시장은 그를 반겨주기나 하듯 일거리도 많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돈 벌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착실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몇 달만에 50만원을 만들어 방 하나를 얻고 안정된 생활을 할 때 호사다마격으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불쑥 찾아 왔다. 소년원 감방 동지로서 별로 대화도 몇번 안했던 사이인데 그놈이 찾아와서 뻔뻔스럽게 밥을 사달라, 옷을 사달라, 잠좀 재워 달라하며 오늘 아침 청주에서 출소 했다고 했다.
그는 3만원을 들여 우선 목욕시키고 옷도 사주고 신발과 식사 등 후히 베풀어 주었고, 그날 밤 그의 방에서 함께 잤다. 아침에 잠을 깨고 보니 그는 감쪽 같이 모든 것을 깨끗이 챙겨 가지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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