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오전 7시20분발 호남선 통일호 기차를 타고 정주ㆍ장성ㆍ나주를 지나 목포에 도착한 시작이 오후1시10분.
매시간 속수무책으로 밀려드는 피서철 인파에 끼어 아슬아슬하게 구한 배표를 쥐고 한숨을 채 돌리기도 전에 곧바로 흑산도행 쾌속선에 올랐다.
멀리 흑산도 예리항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동산에 자리한 흑산도 성당에 도착했을 때 이곳 흑산도 지역 공소를 선교실습지로 택한 몇몇 실습생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지난 7월 14일부터 흑산도본당 오리ㆍ사리ㆍ장도공소와 홍도 제1ㆍ2공소를 중심으로 선교현장 실습에 참가한 10여명의 가톨릭교리신학원생들은 8월 13일 한달동안의 선교실습 생활을 마무리 짓는 피정에 들어갔다.
「꼭 세례를 받고싶어하는 한 어른을 만났습니다. 매일매일 어렵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교리를 배울 시간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전혀 한글을 모르는 처지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주의 기도ㆍ성모송ㆍ영광송을 외워와「한번 들어봐 달라」며 찾아오곤 하셨습니다. 비록 세례성사를 받지 못했고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 세가지 기도문 밖에는 없었지만 그분의 모습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제가 생활한 공소에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얻어 광주서 살고 있는, 2명의 자녀를 둔 한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지고가는 십자가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무거운 돌을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데 돌을 옮기기 전에는 또 밭에 나가 일하지요. 그러면서도 늘 기도하는 모습을 잃지 않으며 살고있지요. 아주머니의 맑은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이 숙연해 짐을 느꼈습니다. 이곳에 보내주신 하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달동안의 선교체험을 더듬어가는 실습생들은 가톨릭 교리신학원 교육과정의 하나로 어쩔수 없이 받아들인 현장실습이었고, 또「무엇을 전해줄 것인가?」라는 막막한 의무감이 앞서는 공소생활이었지만, 때로는 찌들린 모습으로 때로는 열심한 모습으로 가난과 더불어 살아가는 흑산도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결국 자신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였음을 천천히 고백해 나갔다.
「그 후에 주께서 달리 일흔 두 제자를 뽑아서 둘씩 짝을 지어 당신이 장차 가실 모든 마음과 고장으로 미리 파견하셨다」(루가10, 1)라는 말씀대로 이들 10여명의 실습생활들은 두명씩 짝을 이뤄 흑산도내 5개공소에 파견됐다.
흑산도 예리항에서 다시 40여분 배를 타고 들어가는 공소에서의 생활은 실습생들에게는「다른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도 만들었다.
오전6시 아침기도를 시작으로 한달내내 열리는 주일학교ㆍ냉담ㆍ조당신자들을 위한 가정기도모임, 어른들을 위한 예비자 교리 · 피정 등으로 이어져 밤 10시30분이 넘어서야 이들은 하루 일과를 맺을 수 있었다.
흑산도지역 공소에서 선교체험을 한 실습생들이 실습기간동안 가장 크게 펼친 행사는 흑산도본당을 비롯 6개공소 1백20명의 중ㆍ고등학생들이 참가한「산간학교」이다.
「함께 가자 우리」라는 주제아래 8월 2~4일 2박3일간 열린 보기드문 큰 행사이기도 했지만 이번 산간학교는 특히 큰 산을 2개 그리고 봉우리를 3개 넘는 10여시간에 걸친 흑산도 일주를 통해 참가학생들에게 자신의 고장을 새롭게 인식하는 귀중한 시간을 제공했다고 했다.
거의 대부분의 공소가 이미 실습이 끝난 터이지만 선교현장을 한번 둘러보고 싶은 욕심에 다음 날, 흑산면 장도리에 있는 장도공소에 들렀다.
배가 선착장에 채 닿기도 전에 마을 이곳저곳에 흩어져 놀던 어린이들이 달려나와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장도공소는 주민의 50%가 신자인 만큼 흑산도내 다른 공소에 비해 신자들의 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지역이라고 한다.
몇 가구를 지나 공소에 다다르자 공소 한 가운데 제대 위가 노란꽃으로 장식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항상 공소를 청소하고 꽃을 꺾어 이곳을 꾸며놓는 여중생의 착한 마음이 기억에 남는다는 이곳을 다녀간 한 실습생의 말을 쉽사리 떠올릴 수 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해도 한글을 제대로 깨치지 못하는 어린이들과, 문화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채 소외되어 가난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곳 주민들의 모습을 대하면서 엊저녁「하느님은 진정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심을 깨달았다」고 일을 모은 실습생들의 이야기를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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