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창문의 커튼을 열어제친 희주는 반가움으로 충만했다. 부옇게 밝아오고 있는 허공으로 흰 눈송이가 소담스럽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 겨울 들어 두번째 내리는 눈이었다. 희주는 소리없이 내려서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오늘은 어디선가 반가운 편지가 날아오거나, 아니면 반가운 손님이라도 찾아올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드는 것이었다. 아침 식사 준비를 해야했다. 희주는 곤하게 자고 있는 남편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마루로 나갔다.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뜰은 온통 흰 눈으로 덮여있었다. 희주는 뜰로 내려가서 빗자루를 들고 대문께로 걸어나가며 눈을 쓸었다. 대문에 매달려 있는 주머니에서 우유를 꺼내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아직 우유는 와있지 않았다. 대문을 열어보았다. 대문밖의 길도 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때 신문배달하는 학생이 눈속으로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어머. 추운데 수고하시네!』
희주는 학생이 내미는 신문을 받아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얼마 전까지 배달을 하던 그 키큰 학생이 아니었다. 『지난번의 그 학생이 아니네요?』
희주가 그렇게 말하자, 학생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 학생은 저의 형이예요』『어머나. 그래요? 그러면 형은 어디가 아픈가? 동생이 대신 하게?』
『아닙니다. 형은 고3이예요. 이번에 대학시험을 치거든요. 그동안 신문배달을 하며 공부를 했었는데, 이제 시험날짜도 얼마 남지 않아서 제가 못하게 말렸읍니다. 그리고 제가 대신 신문배달을 하는거예요 』『어머, 그럴수가!학생은 몇학년인데?』『고1입니다』『정말 형제 우애가 놀랍네요 』희주는 감탄을 하는 것이었다. 그 학생의 말에 의하면 그들 형제는 몇년전에 아버지가 교통사로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데 어머니를 도와서 신문배달을 하며 학교엘 다닌다는 것이었다. 희주는 그 학생들의 열성에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침식사준비를 거의 끝낸 희주는 방으로 들어가서 남편을 깨웠다. 『여보. 빨리 좀 일어나세요 』몇번이나 소리치며 흔들어 깨우자 남편은 마지못해 일어나며 하품을 했다 『좀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가서 눈도 쓸고 하세요. 새벽부터 뛰어다니며 신문배달하는 어린 학생들을 좀 보세요 』『아니 오늘은 왜 이렇게 설치고 야단이지?』남편은 벌떡 일어나더니 이불을 걷어차고 욕실로 나가버렸다. 희주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불을 개어얹으며, 그 학생들을 생각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다. 이번 주일에는 성당에 가서 그 학생들을 위하여 기도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날이후, 신문배달하는 그 학생을 생각하며 따끈한 우유라도 한잔 마시게 하고 싶었지만 학생은 시간이 없다면서 번번이 사양을 하는 것이었다.
희주는 깜짝 놀라서 잠이 깨었다.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때문이었다. 새벽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성당은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지 않은 언덕에 있었지만, 희주는 남편과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아침식사준비때문에 새벽미사에는 참례를 하지 못했다.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 희주는 현관문을 열어제치고 뜰로 나가서 심호흠을 크게 했다. 맑은 새벽공기가 신선했다. 우유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대문밖을 지나가고 있었다. 희주는 오늘이야말로 신문배달하는 학생에게 우유를 꼭 마시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우유 한컵을 따뜻하게 데워가지고 대문께로 나갔다. 이제 곧 학생이 나타날 시간이었다.
그러나 한참동안 기다렸는데도 그 학생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골목을 내다보고 있는데 저쪽 새벽속에서 학생이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신문을 내밀며 인사하는 학생을 바라보던 희주는 깜짝 놀랐다. 그 학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은 키가 큰 그 학생 그러니까 대학시험을 쳤다는 형이었던것이다. 『아니, 오늘은 형이네』『네. 오늘부터 제가 배달을 하는 겁니다』학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머나, 그래요? 대학시험은 어떻게 됐어요?』희주는 무엇 보다도 그게 궁금했다. 『합격했읍니다. 어제 발표했어요 』『어머나 그래요? 정말 축하해요!』『감사합니다. 아주머니!』학생은 그렇게 소리치며 골목을 뛰어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희주는 손에 들고 있는 우유컵을 내려다보며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어머, 내 정신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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