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결국 한적한 곳을 찾아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래아 바다 또는 티베리아 호수를 건너갔다. 예수의 일행이 배에서 내린 곳은 벳사이다였다. 이곳은 분봉왕 필립의 영토이므로 헤로데 안티파스의 마수에서 벗어난 땅이었고 거기서 내륙으로 인적이 없는 들을 지나 약간 높은 산등성이에 이른다.
예수께서 무슨 의미심장한 일을 하시기 전에 늘 이와 같은 고요한 장소를 찾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교회생활에서 일종의 피정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피정계획은 바꿔야만 했다. 예수의 일행이 출발한 가파르나움에서 벳사이다까지는 육로로 가나 뱃길로 가나 비슷한 거리 약 10리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군중들은 예수께서 배를 타고 가시는 것을 보고 어디로 가실지 곧 알아차렸고 육로로 해서 급히 가 먼저 와 있었다. 때는 마침 과월절이 가까운 봄이었다.
과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들도 거기에 끼어 있었다. 빵의 증식기적이 있은 후 제자들이 추산한 군중수가 남자들만 5천명이었다고 하니까 배에서 내리신 예수께서 이토록 당신을 따라다니는 많은 군중을 버리고 어디로 가시겠는가. 예수께서 그들을 바라다 보시니 목자없이 방황하는 양떼같아서 고요한 곳을 찾을 사이도 없이 식사할 겨를도 없이 이들을 인도해야 할 사명감이 불길처럼 솟아올랐다.
「목자없는 양떼」, 이 표현은 열두제자를 파견할 때도 썼던 표현이다. (마태9, 36 : 대목98 참조). 목자가 할 일은 맡겨진 양떼를 잘 보살피고 파란 잔디밭에로 이끄는 일이다. 착하신 목자 예수께서는 군중들에게 여러 가지로 하느님나라에 관한 설교를 하셨다. 그리고 아픈 사람들을 매만져 낫게 해주셨다. 이것이 예수께서 지금까지 하신 사목활동이었다.
오늘은 예수의 사목활동이 또 하나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날이다. 배고프고 시달린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것이다. 이러구저러하는 동안 해는 벌써 저물었다.
제자들은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스승님께 아뢰었다. 『시간이 이미 늦었고 여기는 외딴곳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무엇이라도 사먹게하려면 인근 농가나 마을로 헤쳐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조언은 해결책이 되지 못하였다. 5천명 이상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농촌부락에서 어떻게 먹을 것을 조달할 수 있었겠는가. 이 사정을 아시기나 한 듯 예수께서는 필립보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살 데가 있느냐』고. 필립보는 이 고장 출신이었다.
이 질문은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주 하느님께 여쭙던 말이다. 모세는 주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이 백성을 저에게 맡기십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이 백성을 유모가 젖먹이를 품듯이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 어디에서 이 백성이 다 먹을 만큼 고기를 얻어 주란 말씀입니까』(민수 11, 12~13).
오늘 광야에서 수많은 백성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은 광야에서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복지로 인도하는 중책을 맡은 모세처럼 제자들과 함께 산등성이에 앉아 계셨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그 지도자가 자리하던 거룩한 곳이다. 예수께서는 이 많은 사람들을 먹여야 할 식량조달을 필립보에게 걱정하셨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어떻게 먹일지를 생각하고 계셨다. 모세는 하늘이 내려주시는 만나를 백성들에게 먹이면서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에 시달렸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배불리 먹일 화수분 단지를 가지고 계셨다.
필립보는 이와 같은 예수의 본심을 알리가 없었고 이치를 잘 따지는 성격이라(대목 30참조) 인간적인 계산으로 대답했다. 이 많은 사람을 먹이는데 어림잡아도 2백 데나리온어치의 빵을 가지고도 부족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며 이 돈으로 그들은 다서 끼니를 먹을 수 있다. 그리고 한 사람분의 간이식사 한 끼니분량은 빵 세개라고 한다. 그런데 마침 한 젊은이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까짓 것을 가지고 문제해결이 되는가. 이런 제안을 한 것을 보면 제자들이 얼마나 사람들을 먹이는데 조바심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굶주리고 난처하게 된 사람들을 구하는 해결사는 언제나 예수님이다. 예수께서는 그 빵과 물고기를 너희가 직접 나누어 주어라고 말씀하셨다. 단호한 말씀이었다. 하느님의 백성사목을 제자들에게 맡기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표현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풀밭에 앉게 하셨고 제자들은 사람들을 50명씩 100명씩 질서 정연하게 갈라 앉혔다. 제자들이 군중을 다루는 솜씨가 드러난다. 이 광경은 사도시대의 식사공동체를 연상케 하며 구약시대의 모세가 광야에서 백성을 이끌고 나오면서 백명, 50명씩 떼 지어 앉혔던 것을 연상시킨다. 풀밭에 사람들을 앉히는 것은 광야에서 싹트는 메시아 시대의 상징으로서「착한 목자의 시편」23장「파란풀밭에 나를 뉘어주시고」란 말씀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메시아적 식사를 암시한다.
제자들은 이 식사시중을 드는데 화수분처럼 나누어주어도 끝없이 빵이 불어나는 것이었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고 한다. 예수께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떼어서 나누어 주는 이 단체식사는 최후의 만찬식을 마무리로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식사를 예고한다. 남은 12광주리는 12사도들이 맡겨진 양떼를 먹여 살리는 밑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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