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을 논한다든지 윤리를 논하려면 우선 인간이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적 윤리관을 말하려면 우선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을 알아보는 것이 순서이다. 그래야만 그 기초위에 그리스도교적 윤리관을 개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인간은「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닮은 존재」라고 고백한다. 그 근거는 창세기 1, 26~28에 잘 나타나있다.
그러나 위의 성경 말씀을 마치 역사적 기술과 같이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성경이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며 성신의 감도하심으로 오류없이 기록된 것임을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하나의 구체적 언어로 구체적 민족에게 계시하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인간 이해는 성서를 통해서 가능하지만 성경을 바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성령의 감도하심(2베드로3, 15~18: 유다 1, 17~23 등)과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신앙고백에 동참해야 한다. 성서가 가르쳐 주는 인간은 다음의 세 가지 차원을 모두 지니고 있는 존재다. 그리고 이 세가지 측면에서 다양하게 묘사하고 가르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신앙에 의한 이해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계시진리를 따라 인간이 하느님을 닮았음을 믿고 고백한다. 그러나 하느님이 형체를 가지시지 않은 분이기에 어떤 외적 모습으로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 인간은 쉽게 우리가 하느님을 닮았다고 생각하기 보다 하느님이 우리를 닮은 존재로 만들게 된다. 하느님을 인간과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의인화(疑人化)인데 이 때문에 우상(偶像)을 만들게 되고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을 섬기게 만든다. 즉 인간이 필요해서 하느님을 부르고 요청하고 그 때마다 인간의 욕망을 채워 주어야 좋은 하느님이고, 인간의 기대나 인식에 못 미칠 때 하느님은 거절당하고 배척당하게 마련이다.
창세기의 가르침을 요약해 보면 인간은 다음과 같은 존재다.
첫째,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게 만물의 영장으로서 정신적 존재이며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느님의 위임을 받아 세상을 가꾸고 보존하며 활용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지성과 의지와 기술로 그 위대함과 고유함을 드러낸다. 이를 영혼의 능력이라고도 한다.
둘째, 인간의 특별한 이 기능은 육체적 조건을 통해서 활용하도록 안배되었으므로 인간의 육체도 현세에서 영혼 못지않게 소중하다. 인간에게 있어 영혼과 육신은 무슨 화학물체같이 분리와 결합이 가능한 이원적(二元的)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서 현실 세상에서, 즉 죽기까지는 육체적 조건으로 존재한다.
요즈음「식물인간」(植物人間)이란 표현이 쓰이는데 이는 바로 육체적 조건 때문에 현실적으로 정상적 사람과 대화나 기타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처지에 놓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 평가의 말이 되어서는 안된다. 의사표현과 상대방의 감지기능이 실존적 생활에서 중요한 것이나 인간 자체의 평가기준은 되지 못한다.
셋째, 인간은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며 다 함께 존경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여기서는 인간의 사회성도 내포하는 것으로 인간의 출생과 성장과 성숙은 부부일신(夫婦一身)이 되는 결혼과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며 사회 공동체와 인류 공동체를 형성한다(창세기 2,18~24). 인간은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이웃을 친절히 받아들이므로 축복의 공동체를 이루도록 창조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이신 하느님의 계시로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으며 인간은 성(性)이 생식의 의미나 쾌락의 도구가 아니고 보다 깊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서의 사랑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창세기 18,1~14: 아가: 요한17,17~26)
육화의 신앙에 의한 이해
하느님의 창조사업은 일회적인 역사의 사건이 아니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여 놓은 것같이 이해할 것이 아니다. 역사의 진행 안에서 인간은 순간순간 하느님께 응답을 하는 존재이지만 하느님께서 당신 능력으로 보존해 주시지 않는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마치 우리가 무엇을 생각했다가 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존재치 않는 것과 같이 비유해 볼 수 있다.
하느님이 생각하시고 돌보시기에 무엇이나 현실에 존재하고 유지되는 것이다. (지혜11, 21~26). 하느님은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말씀은 곧 하느님이시다(요한1, 1~4).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고 또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다』(갈라4, 4~5)라는 성서의 증언대로 인간은 단순한 피조물만도 만물의 영장만도 아니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지닌 존재이다. 이는 인간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고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요한 1, 10~14). 하느님은 세상과 인간을 단죄하시고 벌하시는 분이 아니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이다(요한 3, 16~17). 하느님은 인간의 비애(悲哀)와 불행과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그 분에게 희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로마 7, 25~25).
완성의 신비에 의한 이해
영원한 말씀이 사람이 되실 때『성령으로 잉태되셨다』. 성령의 힘에 의하지 않고는 인간이 변화될 수 없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도 받을 수 없다. 『물론 성령으로 새로 낳음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영이시며 협조자이신 성령께서는 모든 사람 안에서 활동 하시면서 그들을 영원한 삶에로 인도하신다.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람은 하느님의 증인이 되며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서 계획하신 목적에 도달하게 된다. 즉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이며 의화(義化)된 사람으로 바르게 살아가며 자신과 세상의 완성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창조와 구원과 완성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본 모습을 발견하고 성장하며 완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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