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미군 운전병과 함께 지이프를 타고 내가 일하던 서정리에 왔다. 사제관과 성당은 남으로부터 진격해온 제임스 H 린치 중령의 7연대 3대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성당과 건물들은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고 가구나 제의 온갖 기록과 성구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외에도 평양대목구가 어느 성당을 복구할 목적으로 1947년에 미국에서 구입해온 3천 5백불어치의 짐짝들도 없어졌다. 철저히 약탈당한 꼴이라 나는 다만 건물의 상황만 적어둘 수밖에…문과 창문들은 산산조각이 났고 모든게 파손되었다. 그저 건물만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나이 왼팔이던 김요셉씨는 성당 뒤쪽의 조그마한 한옥에서 아내와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그난리 속에서도 몇가지 물건들을 몰래 땅 속에 묻어두었는데 작은 자명총, 십자가, 원고들이 들어있는 가방 등등이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엉망진창이었다.
린치중령은 어제 이 지역을 탈환했을 때는 최악의 상태였다고 말했다.
로버트 B 맥브라이드 3세(대위)는 내게 건물들에 대한 증빙서류를 건네주었다.
나는 신자들에게 이틀후에 와서 성사도 주고 미사도 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발이 되기전에 본부로 돌아왔다. 올 때처럼 다리가 끊기는 등 도로사정이 좋지 않을 것을 예상하여 오후 4시경에 출발했는데 역시 가는곳마다 호송차량과 탱크들이 수없이 통과했다. 우리는 먼지투성인 길을 달릴 수밖에…
▲10월 5일 서정리로 와서 성사를 주었다. 아주 심하게 파괴된 소화성당에서는 신자들이 성당 본건물은 제7연대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나는 오후에야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그곳에 모인 신자들이나 나나 비감한 마음을 금치못했다. 미사후 나는 건져낸 온갖 서류와 원고드를 정리했다. 더러는 상태가 좋았다. 나는 그것을 김요셉 시댁에 잘 간수하라고 부탁하면서 몇가지 지시를 한뒤에 밤이 되기전에 안양에 있는 7사단 본부로 돌아왔다.
▲10월 6일 우리는 명령에 따라 오늘 안양 제7사단에서 인천에 있는 제3병참기지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토비와 웜군목과 함께 나는 병참기지창에 생긴 새로운 국군묘지를 참배했다. 이곳에는 인천상륙과 9ㆍ15 서울수복 및 그전후 몇일동안의 용감한 전사자들이 잠들어있다. 그들 대부분은 해병 제1사단장병들이다.
우리는 제3병참기지에 당도하여 쇼크군목(중령)과 찰스맥기 신부(소령,트렌톤 혹은 뉴와크츨신)의 영접을 받았다. 맥기 신부는 내가 달포전에 도꾜에서 만난 분이다. 그는 퍽 친절했고 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런 관계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인천의 어느 높은 지대에 있는 일본식 집에 기거했고 기지창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10월 8일 인천의 한성당에서 군일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도 했다. 8시 30분 미사는 미해병1사단 군종신부이신 버나드 힉키 신부(로체스터)가 집전했다. 이 부대는 지난달의 인천상륙과 서울 수복이 진행될 때 참전했다. 물론 다른 부대도 서울 수복에 참전했지만…나는 미사직전 제의방에서 처음으로 힉키신부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우리는 해병대의 다른 군종 사제들도 알게됐다. 디트로이트 출신 슐피스 회원인 반 안터워프신부, 뉴육출신인 킬리인과 키니 신부가 그들이다.
그달 내내 나는 쇼크와 맥기 신부를 도와서 두대의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주었으며 주일에는 3차례씩 강론을 했다. 군인들에게 하는 강론은 주로 한국인의 의식과 풍습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한 시각을 비롯하여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역점을 두었다. 횝켈 목사와 나는 제3병참기지 장교들에게 한국 동란의 역사적 배경, 특히 미국과의 외교적 상황, 한국인들의 심정 그리고 관습 등등에 관해 강의했다.
▲10월 21일 우리는 서울로 와서 8군군종신부인 벨리스와 케톨(MㆍM)신부 그리고 쇼목사(평양의 전 감리교회담임)와 함께 한국내의 교회재산으로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는지를 상의했다.
▲10월 23일 한편, 우리는 인천 교외의 포로수용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했다.(인천의 철자는 INCHUN이라야 정확한 발음인데, 군대에서는 INCHON을 사용한다. 나는 일기를 기록하면서도 특히 군과 관련되는 대목에서는 꼭 이철자법을 따른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북쪽으로 가야한다는게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에 오늘 나는 인천성당의 임 바오로 신부를 포로 수용소로 모셔와서 수용소장인 마잉어소령과 로드중위 등 미군 장교에게 소개했다. 이때문에 임신부는 앞으로 수용소의 가톨릭 포로들을 면회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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