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근본적인 구별점이 많겠지만 그중 하나는 오로지 인간만이 신앙을 가는 것이 다른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무엇이길래? 여기서 인간실존의 근원을 밝히지 않을수 없다. 신앙의 주체인 인간의 모습을 성서상에 나타나는 인간과 철학자가 보는 인간을 살펴봄으로써 신앙의 중요성과 신앙과 인간과의 관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성서에서는「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고 철학에서는 인간을「이성적인 동물」이라고 규정한다.
인간은 하느님을 찾게 마련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기에 그는 하느님스러운 욕망을 지녔고 하는님을 찾게 되어있다. 하느님을 찾아 그분을 만나야하는 그 인간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믿음으로만 그낭하다.
믿음이 神과의 관계 가능케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 공로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었다면 과연 자랑할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성서에「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공로가 있는 사람이 받는 보수는 자기가 마땅히 받을 품삯을 받는것이지 결코 선물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하는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게됩니다』(로마서 4, 2~5).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믿음을 통해서만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믿는다고 했다.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
그런데 그 믿음은 어떤 인간의 공로나 인간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받는 보수는 결코 선물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의 귀한 선물이다. 우리가 어떤 댓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또는 어떤 공적을 세웠기 때문에 받는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하느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다. 이 선물은 인간적인 차원에서, 인간적인 상황에서 그 진가를 판단할수 없는 초월적인 선물이다.
이런 선물을 통해서만이 소위「인간구원」이란 엄청난 결과가 가능하게 된다.
인간이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전능하신 손길에 전 존재의미를 맡기는 것이고 그렇게 했을때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될 수 없는 초월적인 결과를 얻을수 있는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요」하였다.「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예수의 말씀이 떨어지자 곧 소경은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 나섰다』(마르코10, 51~52)
『내 믿음이 너를 살렸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서 믿어야 산다. 친구의 말을 믿어야하고 자녀들은 부모를 믿으면서 살아가고 택시를 타는 사람이 택시 기사를 믿을수 있어야 택시를 탈 수 있다. 저 택시 기사가 혹시 강도가 아닌가하는데 불신의 요소가 있으면 우리는 그 택시를 탈 수 없다. 이 세상에서도「믿음이 우리를 살린다」면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은 그것이 믿음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하느님의 전능하신 손길에 소경이 눈을 뜬다면 그분의 전능하신 손길에 영원한 삶이 가능하다는 은혜! 그 선물이 곧 신앙이다.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이다.「철학적인 인간학」에서 학자들은「인간을 무한한 가능성에로 개방된 존재」라고 규정한다. 그 무한한 세계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인간자신이 스스로 개발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와 함께 주어진 귀한 선물이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은혜이다. 그래서 가브리엘 마르셀은「상대적인 인간 나」는「절대 너」를 찾아야하고 그것을 찾는 과정이 인생이고 그「절대 너」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종착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바로「이성」을 지닌 인간의 부르짖음이며 물질을 초월하고 싶어하는 몸부림이 아닐수 없다.
믿음없이 살수없어
「무한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주체성, 이것은 바로「신앙의 주체」이다. 인간은 비록 이땅에 두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머리는 하늘을 향해 있는 직립인간이라는 그 이유가 바로「신앙의 주체」라는 뜻이다. 다시말해서 신앙의 세계를 통해서만이 인간이 가야할 머리가, 그 길이 트이는 것이다. 영원한 사랑이 모든 것이 인간이 찾는 궁극적인 목적이요 인생의 마지막 의미라고 한다면 이것은 결국「신앙」으로써만이 가능하다는 귀결이다. 인간은 그 체구는 6척 남짓하지마는 그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영원한 세계의 향수를 지니고 있기에 존엄성이 운운되고 인간의 초월성이 밝혀진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과학도 어떤 인간의 능력도 답변할 수 없다.
인간은 지식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인간은 능력만으로도 살 수 없다. 인간은 진정『너 믿음이 너를 살렸다』
이 말씀으로만이 살수 있는 신앙의 주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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