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천명을 배불리 먹인 소위 빵의 기적은 군중에게 심각한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모세가 민중을 광야에서 인도할 때 하늘에서 내린 만나빵을 생각하였다.
하늘의 만나는 모세가 하느님이 보낸 민중의 지도자였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보고「저분이 분명 오시기로 되어 있는 예언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저 분을 놓쳐서는 안된다. 저 분을 왕으로 모시자. 이런 쑥덕공론이 군중 속에 퍼지고 있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예언자, 왕, 메시아」는 그들에게 같은 뜻의 민족 구원자였다.
이렇듯 정치적인 메시아로 예수를 착각하고 있는 군중의 기대에 예수께서 부응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세례자 요한 사건도 있었고 예수에 대한 헤로데 안티파스의 오해에 따른 불안이 몰고 올 사태를 예견할 때 5천명이 결속하여 정치적 소요를 일으킨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나라 건설은 그야말로 나무아미타불이 된다. 그뿐 아니라 교회의 초석이 될 12제자들까지 그들과 부화뇌동한다면 큰일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12제자들에게 배타고 벳사이다 맞은편으로 건너가라고 지시하셨다(공동번역에는「건너편 벳사이다로」라고 되어 있는데 이 번역은 빵의 기적이 있었던 벳사이다 맞은 편 갈릴래아 쪽에 또 하나의 벳사이다가 있다는 학설에 따른 것이다. 사건의 문맥으로 보아 벳사이다 맞은 편으로-라 그랑쥬의 견해-라고 번역하는 것이 사리에 맞을 듯).
제자들은 왜 헤어져야 하는지 이유를 묻지도 않고 하라시는대로 순종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먼저 보낸 다음 군중을 헤쳐보내고 혼자서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셨다. 예수께서는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혼자 기도하셨다. 하느님 아버지께 의논을 드리기 위해서이다. 전도여행을 시작하시기 전에도 혼자서 기도하셨다(마르 1, 35).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은 산에서 자신을 드러내셨다(신명 33, 2 : 하바 3, 3).
5천명 군중과 함께 공동식사를 한 것이 저녁이었으니까 제자들이 분부대로 배를 타고 바다위에 떠 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다. 이때가 과월절이 가까웠을 봄이었고 겐네사렛 바다에는 봄바람이 거세다. 더구나 그들의 뱃길은 역풍을 거스르고 있었다. 과월절은 유태아인이 니산달(지금의 4월) 14일에 지냈고 니산달은 춘분 후 초생달부터 시작되니까 오늘밤은 달이 퍽 밝았을 것이다.
제자들이 역풍과 파도와 싸우고 있는 모양을 예수께서는 산에서 내려다보실 수가 있었다. 제자들은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였다. 그들은 구하려는 구원자의 발길은 바다 위를 철벅철벅 걸어서 내딛었다. 바다는 죽음의 세력을 상징하고 그 위에 뜬 배는 구원의 교회를 상징한다. 제자들의 배는 25내지 30스타리온쯤 육지에서 떨어져 있었다. 1스타리온은 185미터이니까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신 것은 약 4~5킬로미터, 십여리쯤 된다. 이때가 야경 제4시였다고 마르꼬와 마태오는 전한다. 이 시간은 밤을 4구분하는 로마식 구분법으로 야경 제4시는 우리의 새벽3시부터 아침 6시에 해당한다.
이 사건이 벌어진 것은 저녁에서 아침 동틀 때까지인데 이 시간은 상징적인 뜻을 가진다. 이샤야서는 이스라엘민족을 멸망시키려는 세력을 가리켜「해질 때 갑자기 닥쳐온 두려움」이라 했고 그 어두움은「아침 해뜨기 전에 가신듯 사라진다.」라고 했다(17장 14). 시편에도「첫 새벽에 주께서 도움을 주시리라」 (46장5)라고 읊었다. 저녁 어두움은 멸망의 세력이고 첫 새벽은 구원의 시간이다.
물위를 걷는 것은 예로부터 하느님의 구원의 길을 걸으시는 동작으로 전해져 온다. 하느님은 바다의 물결을 밟으시는 분이며(욥 9장8) 양떼처럼 당신 백성을 모세와 아론의 손을 빌어 인도하실제 바다를 밟고 다니셨고 대해를 건너질러 달리신 분이며 (시편 77장 19) 바빌론에서 당신 백성을 구출해 내실 때 바다에 큰 길을 내시고 거센 물길을 뚫고 한길을 내신 분(이사43장 16)이시다. 구원자로서의 하느님의 능력이 오늘 물위를 걸으신 예수님께 옮겨져 그의 구원하시는 하느님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탄 배와 마주치자 제자들이 지나쳐가려했다. 이것은 모세가 야훼님께「당신의 존엄하신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했을 때「내 모든 선한 모습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며 야훼라는 이름을 너에게 선포하리라」고 하신 야훼의 말씀(출애 38, 18~19)을 회상케 한다. 과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인「나다」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계시하였다.
한밤중에 물위를 걷는 사람을 본다면 누구나 놀라고 무서워 할 것이다. 제자들이 보통사람임을 드러낸 것이다. 오죽이면 유령이다라고 소리질렀을까. 예수님은「무서워 말라. 나다」라고 말씀하셨다. 「무서워 말라」라는 말은 하느님의 능력이 가시적으로 나타날 때 쓰는 말이며(루가 1, 13 : 마르 16, 6 : 마태 28, 5)예수께서 병자를 치유할 때 안심시키는 말이다 (마태 9, 2ㆍ22 : 마르 10, 49) 사도 바오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밤중에 주님이 찾아와서 같은 말을 하였다(사도 23, 11)
「나다, 내가 있다」라는 말은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이 당신존재를 계시하는 공식적인 용어로서 예수의 일을 통하여 신약에서는 구원자 하느님이 여기 있다라는 계시내용을 뜻한다.
매사에 앞장 서는 기질의 베드로는 빨리 주님께로 가고 싶었다. 『주님이라면 저도 물위를 걷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허락을 받고 물에 뛰어든 그는 그만 첨벙 빠지고 말았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하고 애원하자 역시주님의 손길이 닿았다. 아직은 믿음이 부족한 인간이었다. 배가 목적지에 닿자 그들은 엎드려「당신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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