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주일전날 신부님과 함께 시골공소로 갔다. 저녁무렵이 되니 모든 교우들이 우리일행을 앉혀놓고 차례로 인사하러 모였다.
노인들은 주교님 반지에 친구하듯 무릎을 꿇고 앉아 공손히 손을 어루만지며 인사하는가 하면, 부인회에서는 작은 맥주 3병을 들고와서 나의 발밑에 놓으며 인사했다. 어떤 할아버지는 계란 2개를 가지고 와서 나의 손에 꼭 쥐어 주셨다. 나중에 삶아서 먹으려하니 그 달걀속에는 반병아리가 들어 있었다. 즉 닭이 품고 있던 계란을 나에게 선물로 주셨던 것이다.
성지주일날 신자 각자가 성지가지를 만들어 왔다. 빨마가지를 꺾어 그 가운데 가지각색의 꽃을 꽂는 등 갖은 멋을 부렸다.
성당 밖에서 신부님께서 요란한 빨마가지를 축성하신 후 빨마가지를 높이 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춤을 추며 성당 안으로 입장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예수님 시대의 예루살렘 입성을 연상시키는 듯 했다.
성 목요일부터 부활축일까지는 강건너 벽촌에 갔었다.
하늘의 빛이 겨우 스며드는 밀림터널을 수없이 지나가는가하면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숲으로 우거진 길을 달리니 나무, 잡초 부스러기가 꺾여들어와 얼굴을 찔렀다. 고개를 차 안쪽으로 돌리지 않으면 다칠 것만 같았고 운전하시는 신부님 또한 같은 처지여서 아찔할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또한 밀림 속에 큰 나무들이 길을 막고 쓰러져 있었다. 모두 내려 톱으로 나무를 잘라 내는가 하면 굵은 밧줄로 나무를 옮겨 놓고 길을 지나야 했다. 가끔 얕은 내를 만나 건널 때도 모두 내려서 내를 건너야 했다.
그리하여 장장 8시간만에 그 목적지에 도착했다.
쪼르륵 소리를 연발하는 허기를 아프리카식으로 해결하고, 달려오느라 뒤집어 쓴 먼지를 씻어 내기위해 물가로 갔다.
물이 있는 곳이 좀 멀어 마을 주민과 함께 갔다. 그들은 밀림 속을 다람쥐처럼 빨리 걸었다. 나는 나무위에서 뱀이 떨어질까봐 등이 오싹오싹 떨리고 땅을 보랴, 위를 쳐다보랴 정신이 없었다.
정신없이 잡초를 헤치고 물가에 도달해 보니 흙탕물이 고여있는 작은 개울이 있었다. 흐르는지 마는지 발목이 잠길 정도로 깊은 개울이 있었다.
작은 돌 몇 개로 막아 한쪽은 식수로 사용하고 한쪽은 목욕물로 사용했다. 그 아래쪽에는 마뇩을 물에 담가 놓았다. 그 형편을 보니 씻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셔버렸다.
최후의 만찬예식 때 세례식을 거행하기 때문에 오후에 영세자 찰고를 가졌다. 교리찰고 후 교무금 3백프랑(우리나라돈으로 7백원정도)을 내야 하는데 아깝지만 입교하는 기쁨 때문에 기꺼이 내는 그들을 보면서 성서속의 과부 헌금이 생각났다.
그리고 신부님은『가서 씻고 좋은 옷을 입고 다시 오라』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시작종이 울리자 멀리서 난데없이『알렐루야』를 연발하며 흰드레스(?)를 입은 영세 예비자들이 춤을 추며 입장했다.
물로 씻는 예절이 진행될 때 신부님께서 예비자의 머리에 물을 부의니 옆에서 있던 대모는 아예 대녀의 머리를 비비며 감긴다. 옆에서 예식을 도우던 나와 신부님은 거룩한 예식 중이었지만 마주보며 웃음을 참느라 고역을 치렀다.
또 전례 중에 아기가 울면 아기를 안고 있던 할머니가 영세자 엄마에게 데리고 와서 신부님 앞에서 아랑곳 하지 않고 옷을 열어 아기에게 젖을 먹인다.
하여튼 이 세상의 최후만찬 미사 중 가장 가난한 만찬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구멍난 성당지붕 너머로 보이는 둥근 달을 쳐댜보며 아프리카와 한국의 한분 한분을 떠 올리며 기도를 드렸다.
그날 밤엔 유난히 둥글고 밝은 달이 머리 바로 위에서 우리를 비추었다.
세례를 받아 날아갈 듯 기쁜 기분에 달 또한 이렇듯 밝으니 이곳 주민들이 춤을 추며 즐길 모든 여건이 갖추어졌다.
집집마다 멈춰가며 밤가는 줄 모르고 춤추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꿈나라로 갔다.
다음날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송별회를 가졌다. 이곳 신자들은『우리 마을에 수녀님이 오신 것은 처음』이라며『자주 와서 바느질ㆍ육아법ㆍ위생교육ㆍ치료법 등을 가르쳐 달라』며 부탁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로서는 자동차를 갖고 있지 못해 어떻게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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