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의 불룩한 가슴패기를 보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행여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싸하니 가슴이 아픈 나이가 되었다.
여학생은 죄다 천사가 되려다 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불과 얼마전이었다. 그 전만 하더라도 계집애들 하고는 놀지 않겠다면서 괜히 장난질을 걸거나 고무총질을 하며 키들거렸는데, 어느날 문득 여학생들이 천사가 되려다만 것처럼, 어찌 나같은 사내가 감히 그 곁에 가랴 싶어졌으니 하느님이 어지간히 남자라는 동물을 만들때 고생했지 싶었다.
이걸 사춘기라고 하는거겠지.
공중 목욕탕에서 물기 많고 볼따귀 붉은 여학생이 대야를 들고 나오는 걸 보면 여자랑 한방에서 룸메이트가된 어른들이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도 어서 어른이 되어 여자가 도대체 어찌 생겼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또 한가지 큰 변화는 토요일마다 성당에 가서 고백성사 보는 일이 왜 그렇게 지겹고 겁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토요일만 되면 하느님한테 지은죄 자랑을 하러 가듯 달랑달랑 뛰어가서 오늘은 어떻게 고백할까 궁리를 했었다.
어른들 농담마냥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것이 무슨 죄가 그리 많았을까마는, 신공 바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습니다. 친구와 싸웠습니다. 애긍하라고 준 돈으로 사탕을 사먹었습니다. 동생을 때렸습니다…. 따위가 고작이었는데 그 놈의 사춘기가 되고보니 신부님께 고백하기 쑥쓰러운 것들이 자꾸 생겼던 것이다.
여학생의 그 불룩한 가슴에 손을 넣고 싶다든지 그 품속에 꿈을 꾸고 싶다든지, 성당의 미사참례 때도 건너 자리의 여학생을 훔쳐보느라 건성으로 기도한다든지 따위를 무슨 낯짝이 두껍다고 신부님께 고백을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고백성사를 아니할 재간은 없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라면 고백성사를 보지 않을 배짱이 내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영성체를 하는데 나혼자서만 우두커니 앉아있는 건 내 나이에 참기 어려운 수치였다. 얼마나 죄가 많으면, 어린 놈이 얼마나 지은죄가 크면, 영성체조차 못하고 저리 앉아있느냐며 눈총을 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만 같았다.
그러자니 뒤통수가 뜨뜻한 일이었다. 더구나 환장하게 예뻐보이는 여학생들이 내 우두커니 앉아있는 모양을 쳐다보고는 뭐라고 생각할까를 떠올리면 가시방석도 그런 가시방석이 따로 없을 일이었다.
이 놈의 사춘기라는 게 사람을 아주 우습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먹는 나이를 막을 재간이 없고 돋는 여드름을 밀어넣을 능력이 없으며 여학생 얼굴이 오락가락하는 잘자리의 환상을 지워낼 자신이 없고보면 내 사춘기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애고, 하느님이 쓸데없이 여자는 왜 만들었을까.
내가 이리 고민하고 원망하는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같은 성가대원이고 여학생 가운데 유난히 예쁜 계집애와 눈이 맞은 것이었다. 어린 놈이 어른 마냥 무슨 놈의 눈이 맞은 거냐고 힐난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좀 더 소상하게 진위를 밝힌다.
내 여동생이 에스언니를 삼는 바람에 가끔 우리집에도 놀러오게 되었고 빵집에 앉아 체면차리느라 예쁘게 빵을 뜯어먹으며 유식하고 괜찮은 사내흉내를 내느라 진땀을 뺄 정도의 사이가 된 것이다.
얼굴만 예쁜게 아니라 이름도 환장하게시리 아름다왔다. 고아라는 이름이 내입에서 뱅뱅돌지경이니 내 영혼은 아무래도 그 계집애거였다. 내가 알기로는 영혼의 주인은 하느님일텐데 어찌된 셈인지 자꾸만 그녀가 내 영혼의 주인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하느님 잘못이지 뭐.
여자를 만들지 않았으면 내가 내 영혼의 주인을 어찌감히 하느님이 아니라 그 되알지게 예쁜 계집애라고 생각할수나 있었으랴.
그날도 토요일, 아무리 생각해도 신부님한테 고백성사를 보러가는 발걸음이 편하지 않은날이었다.
고해소를 쳐다보며 내가 지은 죄를 이것 저것 꿰고 있으려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 취미가 참요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본래 하느님이란 용서하는게 직업일텐데, 무조건 용서해 버리지 어째서 굳이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보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신부님께 며칠밤째 고아라 가슴과 입술과 속옷과 남새스런 생각을 했는가 고백한다 말인가.
내 눈이 커진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고아라가 내뒷줄에 다소곳하게 서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 저렇게 천사가 되려다 만 계집애도 죄를 짓는단 말인가.
나는 그 순간, 엄청난 결심을하고 말았다. 내가 고백성사를 길게하면 그녀가 나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겠는가. 그러니 이 기회에 내가 얼마나 죄없이 깨끗한 사내인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죄없는 사내인 나를 사랑할수 있게 만들어 버릴 사랑할수있게 만들어 버릴 찬스가 아닌가.
하느님도 내 모고해를 이해하시겠지. 하느님은 너그럽고 용서하는 직업이니까.
마음 다부지게먹고 고해소에 앉자마자『친구와 말다툼을 했습니다. 이상입니다』라고 해버렸다. 신부님이 고맙게도 보속으로 성모경 세번 하라 일렀고 나는 뒤에서 쳐다보고 있을 그녀를 의식하며, 마치 성스러운 사람인양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지그시 감은채 당당하게 걸어나왔다.
으악!
나는 고해소 옆의 시멘트 기둥에 이마를 찧고는 벌렁 나자빠져버렸다. 그 엄숙한 성당안이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그 지경에도, 눈 앞에 별무더기가 쏟아지는 경황에도 고아라가 까르르 까르르 웃는걸 보고말았다.
모고해 했다고 이렇게 심판을 하시다니. 하느님도 참 너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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