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편 전례운동은 힘을 다해 교회의 기도 가운데「우리」라는 말마디를 넣었고, 능동적인 참여를 신자들에게 호소하고 제대 주위로 예배자들을 모음으로써 교회에 대한 생생한 의식을 갖게 하는데 발전적인 기여를 했다. 그리스도 신자는 전회중이 하느님 앞에「거룩한 백성」으로 서있으면서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거룩한 전례에 참여할 때처럼 하느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자신의 존엄성을 자각하는 때도 없다.
우리 선배들은 제대에 가까이 가지못하고 오직 멀리 떨어진채 복된 성사를 쳐다 보면서도 신앙은 생기를 얻었다. 또 그리스도의 몸이 축성되어 높이 들리는 순간을 보려고 성당의 좋은 자리를 얻기위해 독서대로 다가올 때 신앙의 기쁨은 용솟음쳤다. 또 교회 분열자(종교개혁자)들이 실재 현존을 완강히 거부하는 가운데서 이미 중세후기 이래로 높이 평가되었던 제대위의 성체현시 때에도 그들의 영혼은 기쁨에 넘첬다. 또한 늘어나는 수도 단체가 성체성가에 대한 공경을 종교생활의 중심으로 삼았을 때에도 그들의 영혼은 즐거웠다.
그러나 우리가 성체성사를 공경하는 것만이 아니라 거행하는 것이라는 확신, 그리스도의 몸을 단순히 공경하는 것만이 아니라 봉헌하고 받아 모신다는 확신을 최근에 다시 가지게 되었음은 결정적인 진보이고 소득이다.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것은 무엇보다 교회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지체들인 우리라는 것이 확실해졌음은 더욱 큰 진보이고 동시에 고대의 유산의 재발견이다.
그것은 고립된 개별적인 영성체의 문제 아니고 교회를 구성하는 우리 모두가 구심적, 즉 우리를 한데 모우고 우리를 한공동체로 형성하는 구심적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문제이다.
그것은 미사를 단순히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미사 집전에서 회중이 모이는 결합의 문제이다. 그것은 최소한 성체성사의 완전한 의미가 실천으로 옮겨지는 곳이면 어디서나 이루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개인적 신심이나 미사경본에 열중하게 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공동의 봉헌문제이다. 『당신의 거룩한 백성』『당신의 교회』『당신의 가족』은 기도하고 감사드리고 찬양을 드린다.
이리하여 우리는 미사중에 봉헌기도가 끝나고 봉헌준비가 다 되었을 때 왜 사제가 『우리 주천주께 감사합시다. 이제 우리는 성찬의식을 거행합시다(주님께감사합니다)』라 말하면서 경배의 공동행위에 참여하도록 신자들을 부르는지 쉽자리 이해할 수 있다.
전례의 그 어느 곳에서도 공동체의 행위를 위해 부름이 이처럼 강하게 나타는 곳은 없다. 이미 감사를 드리기 위한 부름 이전에 신자들에게 인사 한 사제가『마음을 드높이』라는 말을 했으며 매순간마다 사제는 신자들이 적당한 응답으로 그들의 동의를 표하기를 기다린다.
과거 수백년간 우리는 전례적 공경에 있어서 큰 발전을 이룩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어떤 벽촌의 교회에서 조차 전례가 다시 공동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미사와 영성체는 또다시 하나가 되고있다. 성예로니모가 로마의 대성전방문 기록에서 언급하듯 신자들의 소리가 어디서나『하늘의 천둥』처럼 울리고 있지는 않으나, 신자들의 응답이 고대교회 때처럼 울려퍼지고 있다.
수년전 미국의 어느 개신교 연구가는 상당한 기간동안 이러한 발전을 가까이 지켜보고나서「로마 가톨릭 교회내의 전례적 르네상스」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독일어와 불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을 이런 운동의 발상지로 보고 있으며, 금세기는 결국 교회사에서 전례의 세기로 알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합의 유대
교회, 즉 바로 지금제대 둘레에 모인 교회, 무수한 제대주변의 교회, 온 세상 이곳 저곳에 흩어진 교회, 이 일치된 우리에게 전례생활을 통해 나타난다. 즉 신앙의 옹호자인 목자들과 더불어 세계 도처의 형제적 공동체와 로마의 최고목자(교황)를 향한 통일된 모습이 없이는 미사가 집전되지 않을 만큼 교회는 보편적이고 유일하다.
고대교회는 이 구분과 통일에 대한 생생한 의식을 지녔고 성체성사 거행과 관계되는 곳에서 보다 그것을 더욱 깊이 의식한 만한 곳은 없었다.
특히 지방교회는 천상 고향에 대한 생각 뿐아니라 모든 세속적 경계와 한계를 넘어 수많은 이들을 결속하는 통일된 유대를 표현하는 명칭, 즉 낯선이들 속에 거류지인 Paroikia라는 이름으로 통했다.
전례 거행에서 우리는 되도록 충분히 통일의 유대를 유지하려는 초대교회의 명백한 증거를 많이 찾게 된다.도시공동체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역시 성찬 모임의 공동체였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이 통일성이 무익하게 파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력히 지적한다.`『단일한 성찬의식을 거행 하도록 배려하라. 왜냐하면 나의 동료 봉사자와 사제단 및 부제와 더불어 한 분의 주교가 있듯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우리를 그분의 피에 결합시키는 잔도 하나이기 때문이다』『불사의 약인 하나의 빵을 떼기위해 하나의 믿음과 한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에 페소 신자들이 함께 모이는 것은 그에게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널리 여행한바 있는 철학자요 후에 순교한 유스띠누스는 성찬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주일에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도시와 시골에 사는 많은 이들을』위한 공동체의 행사라고 기원 후 150년경에 보고한 바 있다.
누룩
초기 교회에 있어 주일의 성찬의식이 실제 주교좌 교회에서만 거행될수 있었음은 어느정도 그럴듯한 일이다. 그리스도교가 차츰차츰 지방으로 퍼져감에 따라 사제들은 매주새로운 지역에서 성찬의식을 집전할 수 있도록 여러 곳으로 파견되었다. 이러한 실천이 도입됨과 동시에 누룩으로 알려진 관습이 중세 초까지 계속 되어왔었다. 그 목적은 적어도 상직적으로나마 성체의 단일성 유지에 있다. 주교는 영성체 전사제들이
성작에 넣을 성체의 조각을 주워 지방의 사제들에게 보낸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도록 회중에게 보내는 신호인 주의평화가 있기전에 일치와 단일성의 상징으로 이 성체조각을 함께 섞는 것(이것은Fermentum을 뜻하는 것임)은 주교좌 교회와 결부된 지방교회의 단일한 유대를 환기시키려는 것이었다.
5세기초에 로마에 이런 관습이 있음을 증언하는데 교황 인노센트 1세는 매주일 명의본당의 사제들에게 누룩을보냄으로써 그러한 관습을 따른다. 이것은『특히 이날에 그들이 우리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않도록 하기위해서이다』사실상 이 관습은 비록 중요한 축일과 부활축일에 한했으나 로마에서 최근 10세기까지 지속되었었다.
순회 전례집전소
목자인 주교아래 불어나는신자 공동체의 단일성을 표현하는 둘째방법은 순회 전례집전소인데 이것에 관한 증거는 로마에서 흔하게 찾는 것 외에도 고대교회의 많은 지역에서 찾을수 있다.
<제공=성체대회 준비위원회 사무처>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