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자는 마음에 의심심어
6, 창세기가 돌려준 외견상 중요하지 않은 계략안에서 우리는 피조물로서의 인간 조건 자체와 연관된 인간의 기분문제를 발견합니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신이「제1진리」에 의해 인도되도록 해야합니다.게다가 그「제1진리」는 인간 존재차체의 진리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이진리에 대치시키거니 그 진리와 대등한 위치에 두겠다고 주장할수 없습니다.
만일 이 원칙을 의심하게 된다면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정의」의 기초는 인간 행위의 뿌리까지 흔들리게 합니다. 사실「거짓말의 아비」인 그 유혹자는 하느님과의 관계라는 진리에 교묘하게 의심을 불어넣음으로써 원초적 정의의 상태를 의문에 처하게 합니다. 유혹자에게 굴복함으로써 인간은 개인적인 죄(본죄)를 범하게 되고 인간본성속에 원죄의 상태를 가져옵니다.
인간은 유혹자 꾀임에 굴복
7, 우리가 성서말씀에서 보듯이 인간의 죄는 인간의 마음(과양심)안에 그 일차적 기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발적 주도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볼 수 없는 존재들의 세계에서 이러난 죄를 어떤 의미로 반영하는 것이고 그 결과인 것입니다. 그 유혹자, 「늙은 뱀」은 이 세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지식과 자유를 하사받은 이 존재들은 이미 이전에 그들의 선택이 영적인 본성과 어울리게 할 수 있도록『시험에 붙여』졌더랬습니다. 창세기 3장에 기록된대로 그 유혹자가 우리의 첫 조상들에게 교묘하게 물어넣는 그「의심」이 그들안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모든 피조물과 특히 순수 영적 피조물들에게 허락된 선의유일한 원천인 하느님을 의혹과 고발의 상태에 쳐넣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온전한 예속을 요구하는 존재의 진리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원초적 교제만이 이 진리를 대신하게 되었고 이것은 그들 자신의 정신(영)을 자유의 원리와 규칙으로 삼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은『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아는』능력을 주장한 최초의 인물들이었고 그들은 피조물로서의 그들 존재의 요구에 따라『하느님 안에서』자신들을 두지 않고 하느님 위에 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누가 하느님과 같겠습니까?』그리고 인간은 유혹자의 제의에 굴복함으로써 반항적인 영들의 노예와 공범자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멸시
8, 창세기 3장에 의하면 최초의 인간이『선과 악을 아는 나무』옆에서 들은 말은 창조주로서 모든 존재와 선의 근원인 분에 대해서 피조물의 자유의지 안에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악의 공격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사욕이 없으시고 진정 자부적 사랑이신 그분은 그 본질 자체가「주시는사랑」인데 말입니다. 바로 이 사랑의 선물이 반대와 대결과 거부와 부딪치게 됩니다. 『하느님처럼』되고 싶어하는 그 피조물은 성 아우구스띠노가 아주 적절하게 표현했듯『하느님을 멸시할 정도로까지 자신을 사랑하는』(신국XIV,28참조)태도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멸시, 하느님 거부, 하느님과 관계되거나 하느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싫어하는 것, 이것이 인간이 악마의 제의에 굴복함으로써 생긴 역사, 시초의 그죄의 뜻을 가장 잘 꿰뚫어 설명해주는 것일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역사의 여명에 일어난 고립된 사건이 아닙니다. 그 첫죄의 유산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사실과 행위와 말과 삶의 조건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대하게 되는지!
창세기는 그죄를 사탄과 관련시키고 있으며 이「늙은 뱀」에 대한 진리는 나중에 성서의 다른 많은 구절에서 확인됩니다.
인간죄의 원초적「모델」
9, 이것을 배경에 두고볼때 인간의 죄는 어떻게 설명됩니까?
창세기 3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주었다. 남편도 받아먹었다』(창세기3, 6)
그나름으로 아주 구체적인 이 묘사가 무엇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이 나무 열매는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유혹자의 안심시키는 꾀임에 넘어가 최초의 인간이 창조주의 의지를 거슬러 행동했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인간은『거짓말의 아비』의 말 속에 담긴 하느님 부정과 증언 전체를 완전히 받아들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그는 자신도『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창조주의 금지령에 반하여 피조물을 이용하려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성 바오로에 의하면 인간의 첫죄는 특히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에 있습니다(로마서5, 19참조). 창세기 3장의 분석과 이 놀랍도록 심오한 본문에 대한 고찰은 인간의 의지 속에「불순종」이 어떻게 생겨서 어느 방향으로 발전될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창세기 3장에 묘사된「시초에」저질러진 그죄는 어떤 의미로 인간이 범할수 있는 모든 죄의 원초적「모델」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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