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를 걸으시면서 스승의 진면목을 목격한 제자들은 악천후의 뱃길을 밤새 저으면서도 신명이 났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이른 아침에 호숫가 서쪽 겐네사렛 땅에 배를 대었다. 이 곳은 이미 예수께서 군중에게 설교하시고 수제자 베드로를 부르며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장소이다 (루가 5, 1이하).
겐네사렛이란 이름은 겐네사르의 비옥한 평야에서 온 지방명으로 가파르나울로시와 가까운 남서쪽에 위치한 동네이다. 아마 간밤의 표류항해로 이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배를 댄 후에 일정한 목적이 없으셨던 듯, 빵의 기적 후 호젓한 곳에서 묵상하시려던 계획이 제자들의 풍랑만난 배 때문에 허사로 돌아가서 바다를 건너와 묵상시간을 가지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예수께서 도착하시자 그 지방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고는 동네방네 이 소식을 알리고 병자들을 앓고 있는 상태 그대로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예수의 옷자락만이라도 병자가 만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청원자들이 너무 많아서 전번과 같이 예수께서 일일이 손을 얹어주거나 한 사람 한 사람 축복해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여튼 병자들이 많이 밀려들어가는 것을 복음사가 마태오는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의 옷술에 닿았던 사람들은 치유의 은총을 입었다
사실 예수께서는 이 지방에서 병자를 고쳐주며 전도하시려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그 곳을 지나가시려는 것뿐이었다.
예수의 마음속에는 제자들에게 생명의 빵에 대한 중요한 강의가 급하였고 마지막 수난을 앞에 두고 반대자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토론을 거쳐야만 했다.
갈길이 바쁘지만 당신을 믿는 이 단순한 고통받는 양떼가 간 곳마다 찾아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그저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분이 저기 있다」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마을에 들어 가나 도시에 가나 농촌 들판에 계시나 예수가 가는 곳마다 사방에서 병자들을 병석에 뉘인 채로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인류 최초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의(기원전 5세기) 바빌론 견문기에 따르면 의사에게 갈 수 없는 사람들은 병자들을 시장바닥에 내다 놓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서서 그들의 병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위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풍습이 이를 유대아인들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왔을까.
하여튼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곳곳마다 도시에서는 시장터에, 마을에서는 지나는 길가에 농촌에서는 밭뚝에 어디에서든지 어디에나 앓고 있는 상태 그대로 데리고 나와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대보려고 하였다.
구약성서 민수기 15장 38~39절과 신명기 22장 12절에는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으로「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대손손 옷자락에 술을 달고 그 옷술에 자주빛 끈을 달도록 하여라. 이렇게 술을 만들어 달고 그 것을 볼 때마다 야훼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그대로 지키도록 하여라.」라는 율법규정이 있다.
유대아인들은 이 규정을 엄정히 지켰고 신성한 옷차림으로 통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내실 없는 겉치레로 흘렀다. 예수께서는 후에 그들의 겉꾸밈을 지탄하면서 위선자들이라고 신랄히 꾸짖으셨지만(마태 23, 5) 예수 자신은 이 규정을 지키는 참다운 이스라엘인으로 안팎으로 일치하는 생활을 하셨음을 마르꼬는 강조하고 있다.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고 병이 나았다는 기적 이야기는 이미 이전에 하혈병 앓는 여인이 몰래 예수의 뒷자락을 만지고 나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르 5, 28~39)
이 밖에도 많은 병자들이 앞다투어 예수와의 접촉을 시도했다는 기사가 이미 소개된 바 있다 (마르 3, 10).
그러나 오늘의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병의 치유가 예수의 간여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자기네들 스스로가 믿음을 가지고 일정한 제도(여기서는 옷자락에 손을 대는 일)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복음시가들이 지금까지 소개한 예수의 기적들이 기적 그 자체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기적의 힘이 예수께서 나오지만 예수의 직접적인 관여없이도 지시된 제도와 임명된 사람들을 통하여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이후 사도들이 기적을 행하며 병자를 치유한 사실들(사도 5, 12~16) 이 예수께서 흘러나온 신적인 능력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기적의 뜻을 암시하면서 기적에 관한 복음을 결론짓는다. 그리고 이 결론은 앞으로 나올 기적에 관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토론의 서장을 이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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