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25일 전쟁때문에 생긴 가톨릭축의 재산피해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노주교님을 면담할 겸 평양진출에 따른 준비차 케롤 신부와 의논도 할겸 지이프로 서울에 갔다.
▲ 10월 27일 평양을 답사하라는 명령과 함께 지이프트레일러, 그리고 생필품을 받다.
브리가디어 스튜어트장군이 내린 명령서를 읽어본다. 『다음의 군목들은(DAC)한국의 평양을 방문하며 1950년 10월 27일부터 약 10일간 종교활동을 한다. 여행편의는 군용비행기 ㆍ 관용차, 그리고 기타편의시설들이다. 패트릭H클리어리 헤롤드 뵐켈』
우리는 각자 지이프와 트레일러를 준비했는데 손수 운전허가를 받았다. 이것은 일종의 특권이다. 공식운전자없이 군용 지이프를 이용하는 것이 평소에는 제한되어있기 때문이다. 오후 2시경에 서울을 향해 미8군 군종부에서 셰리 신부와 케롤 신부를 만나 하루밤을 묵었다.
▲ 10월 28일 아침 7시 30분에 북쪽을 향해 서울을 떠났다. 케롤 신부와 쇼목사(2차대전 당시 평양에 있는 남산감리교회 목사로 있다가 남진주만 공격전에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포로가 되지 않았었다)는 케롤 신부의 스테이션 웨곤에 뵐켈과 나는 각각 지이프와 트레일러를 운전했다.국도를 따라 황해도를 지나 우리는 별사고 없이 오후 4시 30분경에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으로 들어가는 대동강 다리가 폭파되었으므로 우리는 비행장 맞은 편에 놓인 부교를 통과했다. 그리고는 곧장 기림리로 들어갔다. 나는 진주만 공격이 있었을 당시 이곳의 신설본당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 10월 29일 나는 기림리의 홍주교님 댁에 있는 성당에서 아침 미사를 드렸다. 옛날 신자들이 많이 보였다. 그 가운데에는 감말딩씨도 있었다. 그는 지물포를 경영하는 김요한의 부친이다. 김요한은 알리어 신부가 몇년 전에 성미카엘성당에서 훈련시킨 청년 성가대의 기둥이었다. 나는 1940년에 새본당을 신설했을 때 성삼위성당이라 명명했던 작은 건물을 둘러보기 위해 차물 멈추었다.
건물자체는 여전했지만 오랫동안 사용치 않아서 꽤나 퇴락해 있었다. 사제관을 비신자인 어떤 젊은 부부가 차지하고 있었고 가구나 비품 그리고 내가 두고 떠난 장서들은 흔적조차 없었다. 이런 물건들은 내가 일본인 포로 수용소에서 6개월을 지낸뒤 1942년 5월에 송환될 당시 미사가방과 옷가방만 들고 남겨둔것인데…
홍주교님은 주교관내 소성당에서 주일미사를 지낸듯 하다. 나도 거기서 오늘 아침 미사를 봉헌했다.
주교님이 이 지역에 거처를 확보한 직후에는 사제수효가 너무나 적어서 기림리의 성삼위성당을 운영할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주교님이 투옥되시기 전에 교회재산을 매각했는지 않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오후에는 사이호(SAIHO)로 차를 몰았다. 케롤 신부와 함께…성당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성당과 중심건물은 분명히 공산군들이 병원으로 사용한듯 했다.
가구들은 철저히 가져갔고 들것과 매트리스 몇개를 제외하고는 건물의 창문들은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천정쪽에 붙은 휴게실 서쪽 벽에는 로케트를 발사하기 위한 구멍이 휑하니 뚫려 있었다. 나무로 된마루는 지름6피트 정도나되는 둥근 구멍이 나 있었는데 아마도 로케트를 맞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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