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의 정식 명칭은 「워치타워 성서책자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여호와의 증인」 또는 「파수대」의 영어인 「워치 타워」라고 불리운다. 「여호와의 증인」이란 명칭은 이사야 43, 10~12의 『너희가 바로 나의 증인이다』 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 교단의 창시자는 럿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이다. 그는 미국펜실바니아 출신의 잡화상으로 원래는 조합교회의 신자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옥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는 안식교를 창립한 밀러(William Miller)가 『지옥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아 그를 따르게 되었으며 안식교의 또 다른 창립 멤버인 화이트부인(Ellen Gould White)이 『영혼은 불멸이 아니다. 지옥과 무덤과 음부는 같은 것이다』라고 설명하는데 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4세기의 이단자 아리우스(Arius)가 예수의 신성(神性)을 부정한 것을 받아들여 자기 나름대로의 교리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교리가 안식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듯 안식교에 대해서는 항상 세찬 비난과 공격을 가하였다.
럿셀은 1872년 「여호와의증인」의 전신인 「미국성서연구회」를 창립하였다. 그는 1876년 「주님의 재림의 목적과 그 방법」이라는 소책자를 발행하였는데 거기에서 그는 『예수는 1874년에 재림하였지만, 영체(靈體)로 재림하였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말세의 시간 또한 임박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1879년 「아침의 여명」이라는 잡지를 출판하였다. 이 잡지는 그 후 이 교단의 기관지인 「파수대」로 개칭되었다.
럿셀은 항상 묵시록 7장에 나오는 14만 4천명이란 여호와의 증인을 뜻하는 것이며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14만 4천명이 되면 세계는 종말을 거두게 되고, 자신들만이 살아남아 세계를 통치하게 되고, 자기들 이외의 모든 중교와 세상 정부들은 모두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선전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1914년에 발생한 세계 제1차 대전을 보고, 이 전쟁이야 말로 세계의 마지막 전쟁인 아마게돈(묵시록 16, 16)전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는 1915년으로 끝난다. 그때까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14만 4천명에 이르게 된다면 세속적인 정부와 일반 교회는 불과 유황 속으로 던져지고(묵시록14, 10)우리 여호와의 증인들은 세계를 통치하게 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예언은 적중되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신도들이 이탈함으로써 교단은 점차 위기상황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1916년 럿셀은 여행도중 갑자기 사망하고 말았다.
럿셀이 사망한 다음 2대교주인 루터포드(Joseph Franklin Rutherford)가 교단을 계승하였다.
루터포드는 럿셀의 주장을 수정함으로써 교단의 위기를 극복코자 하였다. 우선 그는 「여호와의 증인」신도가 14만 4천명이 되면 세상종말이 온다는 럿셀의 주장을 요한복음 10, 16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을 데려 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아래 있게 될 것이다』라는 귀절을 인용하여 「여호와의 증인」교단에는 14만 4천명의 여호와의 증인들과「다른 양들」도 있다고 수정하였다. 또한 그는 1914년은 세상의 끝날이 아니라 끝날의 시작이며 예수는 1874년에 재림한 것이 아니라 1914년에 재림하였고, 1918년에는 그의 궁궐(말라기 3, 1)에 들어가 하늘 정부를 세우고 자신들의 교리를 믿고 있지 않는자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수정하였다. 그는 1925년에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다시 수정하였으나 그것이 불발되자 또 다시 1975년 10월 1일로 수정하였다.
실상, 1975년에는 한국에서도 이들의 말세론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가 일어나기도 했었다. 많은 신도들은 가정과 직장까지도 포기하면서 집집마다 방문하여 이 말세의 시간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예언역시 적중되지 않자, 이들의 전교활동은 크게 위축되었고 이탈자도 속출하였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이 종교는 다시 활발한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1975년을 말세의 시간으로 보았던 것은 계산상의 착오였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시간은 제시하지 않지만 곧 말세가 닥친다고 과거와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이 종교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이 종교는 1912년 홀리스터 선교사 부부가 입국함으로써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역사가 길고 이들의 활동 또한 활발하지만 그 교세는 여기에 따르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여러차례에 걸친 말세의 시간이 맞지 않았다는 것과, 개신교 여러 교단들이 이종교의 문제성을 신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종교를 신봉하다가 많은 피해를 본 신
자들이 탈퇴하여 교단의 비리와 피해상황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이 교단에서 신자들을 출교시키고 있는 것도 교세증가를 억제하는 중요한 원인이되고 있다. 출교자들에 의하면 이 교단에서는 교리에 의심을 품거나 교단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가혹할 정도로 출교처분을 내린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출교처분을 받은자들은 세계적으로 1백 6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단의 본부는 미국 뉴욕의 부르클린에 있다. 1986년 현재 세계의 신도수는 약 3백만명이며 한국의 교세는 회중수(교회)715개, 신도수 약5만명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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