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5월 6일 여의도 103위 시성식장. 2백주년 행사의 최대경사인 이 시성식을 주례한 교황 요환 바오로 2세가 「바티깐」의 전통을 깨고 「우리식 제의」를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상아빛이 조금 짙은 황금색의 구름이 날개치듯 무늬를 이룬 옷감으로 만든 이 제의는 모양이 언뜻 옛날 임금이 입던 곤룡포를 연상시켜 주었다.
매듭 연구가 김희진씨가 제작한 이 제의가 선보인 후 교회 일각에서 제의의 토착화 문제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조용한 편이다.
사제가 미사를 집전할 때 장백의 위에 입는 제의는 원래 로마시대 외투에서 유래됐다. 중앙에 파인 홈으로 머리가 통하고 소매가 따로 없는 헐렁한 이 외투는 4세기부터 로마원로원의 제복으로 귀족들의 집회에서 유행했고 자연스럽게 성직자에게도 도입, 미사때 제의로 사용하게 됐다. 그 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형돼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재료는 원래모직을 사용했으나 십자군 원정이후 「다마스커스」의 질좋은 비단을 사용했고 모가 섞인 천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재료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멍애를 상징하고 애덕을 표시하는 제의는 현재 국내 대부분의 수녀회에서 제작하고 있다.
이중에서 특히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는 성체를 중심으로 전례생활에 더욱 깊이 참여하기 위해 제의, 제구등의 전례용품을 제작함으로써 전례위주의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제의 제작은 보통 옷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지만 재봉틀보다 사람의 손길이 더욱 많이 가며 단순하게 옷을 제작하는 것과는 판이하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제의 앞뒤에는 십자가를 변형한 여러 상징으로 장식을 하는데 제의를 주문한 사제가 모또로 삼는 성서귀절에 합당한 상징을 디자인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상징 디자인이 끝나면 옷본을 만든후 재단을 거쳐 옷감을 수틀에 판판하게 끼워 상징 디자인 모양에 따라 수를 놓게 된다.
제의 제작에서 이 수놓은 과정이 가장 힘들고 오래 걸리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수실을 구입한 후 그대로 사용했으나 요즘은 수놓는 사람이 적어졌기 때문에 수실 구입 후에도 용도를 변경, 사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또 제의생과 그 의미에 맞춰 수실의 색상선택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한 바늘 한 바늘 정성스레 수를 놓으면서 수녀들은 제의를 입을 성직자를 위해, 또 희생·보속으로 기도한다. 이렇게 여러 지향을 두고 기도하며 수놓는 과정은 보통 1주일이 걸린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가 미사때 입는 제의와 성무를 집행할 때 꼭 착용하는 영대는 이처럼 수녀들의 정성과 기도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제의는 크게 외부에 입는 제의·부제복·영대, 내부에 입는 장백의·개두포·띠 등으로 구분되며 전례력에 따라 사제는 미사때 제의색을 다른 것으로 사용한다.
백색제의는 기쁨·영광·결백을 의미하고 홍색제의는 성신(聖神)과 순교를, 녹색은 희망과 생명, 자색은 통회·보속을, 흑색은 죽음, 장미색은 기쁨과 휴식 등을 각각 상징한다.
제의는 색상에 따라 사용시기가 다르다. 백색제의는 부활·성탄시기와 예수의 모든 축일(수난관련축일 제외)에, 홍색제의는 성신강림대축일·성십자가 현양축일, 순교가들의 축일에, 녹색제의는 연중시기에, 자색제의는 대림·사순시기에, 장미색제의는 대림 제3주일·사순 제4주일에 사용한다. 또 공의회 이후에는 연미사·장례미사 때 사용하는 흑색제의 대신 자색제의를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의색은 일반적인 옷감의 색상과 다르기 때문에 스승 예수의 제자수녀회의 경우 제의에 적절한 색상과 수놓기 편리한 직조형을 섬유공장에 특별주문, 다량으로 구입해놓고 사용하고 있다. 재료는 보통 모직과 혼방이고 여름에는 갑사·쿨론·물실크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제의 한벌 값은 옷감 종류와 수놓는 모양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평균 15~16만원선이다. 사제서품 때 장백의에서부터 수단·성구일절까지 구입하는데 2백여만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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