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용서라는 강(江)을 건너지 않고는 결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화(聖化)의 길로 나아갈 수는 없다. 그 용서는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용서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오늘의 복음은 말씀하신다.
사실 용서한다는 기본적인 이유와 그 불가피성은 이미「주의 기도」에서 주님께서 명시하셨다. 즉『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것은 인간은 그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는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의 죄를 용서해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느님으로부터 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함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즉『제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제 죄를 용서해주시지 않으신대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이다. 이에 대해서 오늘의 복음은「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깊이 명심하도록 일깨우신다. 즉 1만 달란트나 되는 빚진 사람이 왕으로부터 그 모든 빚을 탕감받았다. 그런데 그는 겨우 1만 달란트의 60만분의 1밖에 안 되는 1백 데나리온(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을『빚진 친구(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내 빚을 갚아라」고 호통을 쳤다』그 친구는 갚을 길이 없어 며칠만 참아 달라고『엎드려 애원했다』그러나『그는 들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그러자 다른 친구들이『그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사실을 낱낱이 일러 바쳤다』그러자 왕은 몹시 노하여, 그를 다시 잡아들여『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하시며, 그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라고『형리에게 넘겼다』
그렇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지은 죄는 1만달란트, 아니 그 수천만배 이상으로 누적돼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 것이 아닌 게 없다. 하늘, 땅, 공기, 물, 태양, 모든 먹이들, 존재하는 무엇하나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 아닌가? 언제 우리가 그것들을 돈을 주고 사거나 만들어냈던가? 모두가 하느님 앞에 빚진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이웃이나 동료, 친구나 형제들이 우리에게 잘못한 일이라든가, 빚진 것은 이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정도도 안된다. 그것을 가지고 그렇게도 야단법석이란 말인가? 인간의 배은망덕이여! 그리고 인간의 잔인하고도 옹졸함이여!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꺼려한다. 그래서 용서를 청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용서를 청하면서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참으로 크고도 장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용서를 해준다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도량이 넓어야하며, 깊은 이해심이 있어야 한다. 잠시동안 용서한다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용서란 진정으로 상대방의 잘못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없었던 일로 여기고 그 일을 잊어버리는 것을 뜻한다. 즉 원한이나 분노, 당한 모욕이나 금전적 손해 등까지도 다 하늘에 날려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니 더 큰 사랑의 마음으로 대해 주어야 함을 말한다.
생각해보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언제 우리 죄대로 갚아주셨는가를……『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여라』는 그 말씀 그대로 우리 인간의 패악(悖惡)을 끝까지 용서하시고 계시지 않는가! 만일 우리 인간사회에서도 그렇게만 한다면, 아니 베드로의 말씀대로「일곱번」만이라도 용서해 준다면,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메마른 사회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우리 이웃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오늘의 복음에서의「무자비한 종」과 같이 심판 날에 하느님께서 갚으신다는 사실을…….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실 것이다』
사실 심판 날까지 갈 것도 없이, 오늘날의 이 세상은 서로 용서해 주지 않으므로해서 이렇게도 살벌한 세상이 되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