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일정한 시간만을 산다. 그리고 죽게 된다. 어떤 사람은 더 오래살고、어떤 사람은 짧게 살 뿐이다. 모든 종교들은 예외없이 죽음 이후의 세계와 어떤 희망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교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또 그런 희망에 대해서는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가?
모든 종교들은 비록 각기 다른 모양이긴하나 죽음 이후의 희망에 대해서 즉 저승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물음에 해답을 주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하는 신앙고백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영원히 삶을 믿나이다』로 끝을 맺고 있다.
우리가 고백하는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은 곧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 예수는 죽었으나 다시는 죽지않는 새 생명으로 부활한 것이다. 우리가 죽은 후에 영생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이 신앙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에 대한 기쁜 소식을 더 연장시키고 부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며 성체를 모시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분의 죽음에도 동참하게 된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앞으로 죽은 후에 그분의 부활과도 함께 할 것임을 믿고 또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 입니다』(로마서6,5). 바오로는 신자들에게 이 같은 확고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라고 권유했다.
여기서 인류의 가장 큰 고뇌인 죽음이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 만일 하느님이 모든 것을 결정할수 있는 분이라면 죽음도 그 분의 능력에 한계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죽음은 사람과 하느님과의 만남、하느님과 사람과의 만남이 될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죽음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그분이 죽은 후 다시 살아남으로써 사람의 죽음도 극복될 수 있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고 또 실제 그렇게 된 것이다.
죽은 후의 세계가、영생과 부활、하느님을 만나는 장면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자세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서 알려준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다. 성경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에 적합한 상징이나 비유로써 설명할 뿐이고、예술적ㆍ문학적 표현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또 성경은 영원한 생명의 내용을 현재 육신적 생명처럼 이 지상의 어떤 대상물처럼 묘사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받을 위로를 생각해 보라고 호소하며 회개하도록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 후에도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에 덧붙인 것도 아니고 서로 다른 것도 아니다. 죽음 이후의 영생을 믿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믿는 사실에서 따라 나오는 결과이다. 즉 하느님이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분이라는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죽음이 아무런 뜻이 없으며 하느님과의 연관성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도 그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가 사실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존재가 온전히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께로 향해 결정되어있다는 상황을 말해준다.
사람은 불멸과 불사、영생을 요구하며 외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해답은 오직 하느님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선물로 준 충만한 생명、생명의 원천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가 죽은 사람들로부터 가장 먼저 부활했다고 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확신이요 중심에서 비롯된다(예=로마서8、29: I고린토15、20: 골로사이1、18).
우리들이 희망할 수 있는 이유와 기준은 예수의 부활이다. 우리가 신자로서 영생으로 부활할 것을 희망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승천에 대한 우리 믿음의 발전이며 연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고 세례를 받을 때 예수의 죽음과 일치하게 된 것이고 또한 우리가 죽은 후 그분의 부활에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예=로마6、5). 성 아우구스띠노는 이런 뜻에서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인 것을 그리스도는 몸소 실현하셨다. 우리가 희망하는 것을 아직 보지는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미래의 몸이므로 우리가 희망 하는 것이 사실로 될 것이다』고 잘 말씀하셨다.
죽음에서의 해방이 곧 영생이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I요한3、14). 성경은 사랑이 없는 것은 곧 죽음이며 이는 죄의 결과라고 가르친다. 즉 자신의 잘못에 기인하여 사랑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죽은 후에도 예수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희망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죽어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