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노동문제상담소」가 지난 1월 13일 공식 출범함으로써 서울대교구 산하에는 4개의 노동문제 전문상담소가 들어서게 됐다.
이 상담소의 개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ㆍ산업재해 등을 둘러싼 노동계의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교회의 노동자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사목배려로 이해돼 크게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상담소가 맡고 있는 역할과 상담소와 노동자의 수를 비교해 볼 때 아직은 지역본당 중시의 노동문제 상담소와 상담원의 수가 태부족하다는 소리가 높다.
현재 서울대교구내에서 노동문제를 상담하고 있는 곳은 명동노동문제상담소와 구로1동 노동문제상담소、종로 노동사목회관에 있는 노동사목위원회 그리고 이번에 개설된 창동노동문제상담소 등 4곳뿐이어서 상담소가 위치한 지역의 노동자들에게만 도움이 될뿐 타지역에 있는 노동자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교회내 기존 노동문제상담소는 그동안 신자 비신자를 막론하고 노동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당해고ㆍ산업재해ㆍ노동법ㆍ체불임금ㆍ휴가 및 제수당ㆍ취업문제 등 온갖 문제를 상담해 주면서 노동자의 권익보호에 선두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또한 상담소는 문제해결 과정을 통해 신자에게는 더 깊은 신앙심을 갖게 해주는 비신자는 신앙심을 갖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등 복음 선교적인 차원에서도 중대한 몫을 담당해왔다.
교회내 상담소는 일반 사회 상담소와는 달리 인간을 중심에 놓고「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노동문제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증진시킨다는 독특한 평을 받고 있다.
따라서 교회내의 노동문제상담소는 내방자라는 개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문제해결 과정을 통해 전체 사회의 인간화와 복음화를 실현시키는 데 있어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실례로 명동노동문제 상담소의 끈질긴 노력으로 82년 휴식시간 중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과、84년 진폐증 환자가 합병증으로 사망했을시 보상금이 없던 것을 공동사인으로 변경케 해 광부들의 직업병에 대한 보상기준을 크게 증진시킨 사례를 비롯、노동자들이 좀더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은 공헌을 해왔다.
또한 명동상담소의 경우 지난 한해만 해도 4천1백여명을 상담、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실제로 보상금 3억9천여만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기여를 해왔다.
이와같이 교회에 상담소의 역할과 기여도를 생각해 볼 때 지역본당을 중심으로 한 노동문제 상담소의 증가 필요성은 충분하고 상담소가 각 지역에 균형있게 증가 개설되기를 기재하는 마음도 또한 크다.
하지만 상담소는 이런 역할에도 불구 수적인 증가 면에서 큰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6ㆍ29」이후 사회에는 노동문제 상담소가 2백여개 신설된데 비해 교회내에서의 상담소는 이번에 개설된 창동상담소 한 곳뿐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내에서는 그동안 노동자에 대한 성당 내의 장소 및 시간 배려도 아주 미흡해 그 비판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회의 현상에 대해 노동사목 관계자들은『성직자ㆍ평신도의 많은 수가 아직 노동자에 대한 깊은 관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교회내 상담소는 시대적 사회의 요청에서 볼 때 많이 증가 돼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내 상담소에 일하고 있는 상담원들은 단순한 상담소의 증가만이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상담소에서 일할 수 있는「인적지원」이 먼저 확보돼야 다방면에서 상담소 역할의 신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교회내 4군데의 상담소의 경우、명동상담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담원 1명이 상담업무에 관한 제반사항을 담담하고 있어 다양하고 충분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적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담원을 고용할 수 있는 재정이 확보돼야 하지만 재원 확보에 있어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개 노동자가 많은 지역은 가난한 본당일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본당의 힘만으로 상담소를 개설 또는 인력을 증가하라고 요구하기는 힘든 것이다.
이와관련 상담소의 관련자들은『교구적인 차원에서 지역본당의 상담소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동시에『무엇보다 성직자ㆍ평신도의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許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