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무엇인가?」하는 근본적 물음에 대하여 단순명료한 정의(定義)를 내릴 수가 없다. 교회는 인간의 한정된 개념으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도 깊은 신비에 쌓여있는 실재(實在)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학적 언어도 교회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고、교회를 여러 방면에서 묘사하는데 불과하다.
이러한 한정된 언어 중에서 교회를 가장 깊이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이 친교(親交)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친교의 신비이다.
그리스도는 빠스까의 자기 봉헌으로써 새로운 아담이 되어 인류의 구세주요 만물의 지배자가 되셨으므로(에페120~22) 교회의 머리로서 구원의 은총을 당신 몸의 지체인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시어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켜 친교를 맺게 하신다.
이 친교의 신비를 성서의 가르침에 의하여 묘사한 것이 소위 교회론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 관한 논의를 체계화하기 전에 성서에 제시된 교회상(敎會相)을 찾아 보아야 한다.
교회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은 추상적 개념이나 체계적 이론이 아니고、하느님께서 어떤 의도와 경과를 거쳐서 인간을 구원에로 이끄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우리가 성서에서 찾는 교회상은 구세사(救世史)의 진전에 따라서 서서히 부각되고 구체화되는 교회의 모습이다. 성서에 나타난 교회는 어떤 사회학적 단체이기 전에 구세사의 맥락 안에서 떠오르는 구원의 실현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성서와 공관복음과 서간성서에 묘사된 교회의 모습을 개관하고서 교회를 체계적으로 논술하고자 한다
1、구세사의 선사(先史)
시대의 교회론적 의미
구약성서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근간으로 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구약성서의 의미는 이스라엘 민족사를 서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이라는 구원의 도구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의지의 실현과정을 보여주는데 있다. 줄여서 말하자면 성서는 엄격한 의미의 역사서도 아니고 윤리교과서도 아니고 더 더욱 과학서도 아니고 오직 종교서일뿐이다. 그 책은 조물주이신 하느님과 피조물인 인간과의 실존적 관계를 시간과 공간안에서 묘사하는 신앙적 서술이다.
이러한 관점은 필자가 구세사의 선사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는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의 내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창세기의 첫 부분에는 천지창조、인간의 타락、카인과 아벨、노아 홍수、바벨탑 등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아무도 그러한 사건들의 역사성을 증명할 수는 없는 것이고、이러한 설화(說話) 속에 담겨있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친교와 단절(斷絶)의 관계를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서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관、인간관、세계관이 표명되어 있는 것이지、세계나 인간의 태고사(太古史)를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과학적 역사로서의 태고사는 고대의 인간에게나 현대의 인간에게나 아득한 과거의 장막 안에 가리워져 있는 것이다.
구세사적 관점에서 이 대목을 다시 읽어보면、야훼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세계를 창조하셨고、당신의 가장 사랑스러운 피조물인 인간과 친밀하고 상세하게 대화하는 방식으로 인간과 하느님의 친교를 묘사하고、하와의 창조와 아담과의 행복한 생활을 묘사함으로써 인간 상호간의 친교를 말하고、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로 세우시고「아담이 만물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묘사로써 인간과 자연과의 친교를 논하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는 성급하게도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함으로써 범죄한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인간들이 자기네와 하느님과의 원초적인 관계(조물주:피조물)를 오해하여 자기 자신을 자기의 목적으로 착각하는 교만한 죄를 지었다고 가르친다. 창조에 나타난 친교는 범죄에 있어서는 비극적 단절로 표변하고 있다.
죄악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얼굴을 피하게 함으로써(창세 3,8) 하느님과 단절시키고、내외간의 대결과、형제간의 살육을 통하여 인간관계를 단절시키고 물질세계도 인간에게 모반하고(창세 3,17~19)、마침내 자신과의 단절인 죽음에 이르게 한다. (창세 3,19)
그러나 이러한 단절은 영원한 단절이 아니다. 인간의 범죄에 대한 처벌선고가 끝나기도 전에 인간구원의 한가닥 희망을 비춰준다. 뱀의 후손과 여인과의 투쟁을 말하면서(창세 3,15) 구원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시사는 인간구원의 최초의 복음이라 할 수 있겠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죄악이 창궐하여 단절의 처벌을 받는 중에서도 노아의 구원을 통하여 인간의 구원이 암시되고 있으며、노아를 구해준 배는 신약에서 교회의 상징으로 이해된다(1베드 3,20~21). 여기서 야훼 하느님은 노아처럼 하느님의 주권을 존중하는 인간들의 구원을 약속하신다.
바벨탐의 이야기는 다시 한번 인간들의 범죄의 결과를 보여준다. 인간이 스스로 설정한 우상들、그것이 물질이건、기술이건、인간이건 상관없이 하느님의 주권에 도전하게 되면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때문에、거기에는 행복과 일치는 없어지고 분열과 좌절과 혼란이 따를 뿐이다. 이렇게 창세기 첫 부분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원초적으로 친교의 관계였으나 인간의 죄악으로 이 친교가 손상되지만、하느님은 다시 친교의 기회를 마련하시는 구원의 섭리를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어 구세주의 도구로 삼으시고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준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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